글로벌 콘텐츠 공룡 넷플릭스가 LG유플러스에 이어 KT의 인터넷TV(IPTV) 셋톱박스에 탑재되면서 국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장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가뜩이나 넷플릭스가 자본력과 규모의 경제로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이는 상황에서 1위 유료방송 사업자와 제휴까지 맺으면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돼버린 모양새다. 디즈니플러스, HBO 등 해외 강자들의 한국 시장 진출도 물밑에서 추진되고 있다.
정부가 이에 맞서 국내 OTT를 지원하기 위한 민관 협의체 가동에 나섰다. 토종 업체들의 제휴·협력을 촉진해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에 맞설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방통위 ‘OTT 정책협력팀’ 신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8일 웨이브, 티빙, 시즌, 왓챠 등 4개 국내 OTT 사업자와 만났다. 한 위원장은 이날 “국내 OTT는 과도한 경쟁으로 상호 콘텐츠 제휴가 되지 않지만, 넷플릭스는 국내 콘텐츠 제공이 용이하다”고 진단했다. 현재 국내 콘텐츠 생산자인 종합편성채널, CJ ENM 등은 넷플릭스에 프로그램을 공급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대로 가면 여러 방송사 콘텐츠를 다 받는 넷플릭스만 승자가 될 것”이라는 자조가 나온다.한 위원장은 “OTT와 전통 미디어의 상생, 발전을 통해 미디어산업 전체의 국내 경쟁력을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에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방통위는 이달 중 ‘OTT 정책협력팀(가칭)’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OTT 정책을 총괄하고 관계부처와 협의를 진행하는 기구다. 콘텐츠·플랫폼·시민단체·학계 등의 의견 수렴과 함께 인공지능(AI) 기반 음성-자막 자동변환시스템 개발 등도 함께 추진한다. 배중섭 방통위 방송기반국장은 “OTT 정책협력팀은 토종 OTT 업체 간 협력 모델을 찾는 게 목적”이라며 “OTT 사업자들의 애로사항을 듣는 창구 역할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OTT 협력 판 깔리나
앞서 정부는 “한국판 넷플릭스 다섯 곳을 키우겠다”며 플랫폼 대형화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내놨다. 플랫폼 사업자 간 인수합병(M&A) 절차를 간소화하고 1등 사업자의 점유율을 제한하는 합산규제를 없앤 바 있다. 콘텐츠 투자 확대, 국내 미디어 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 공정·상생 환경 조성도 지원하기로 했다. 여기에 ‘OTT 정책협력팀’을 신설해 국내 업체 간 협력을 위한 판을 깔아주고 나섰다.정부의 지원 구상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웨이브다. 유영상 SK텔레콤 부사장은 지난달 “필요하다면 민·관 합동으로 대규모 펀드 및 합작 플랫폼을 구축해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며 군불때기에 나서기도 했다.
웨이브 등을 제외하면 정부가 주도하는 이번 OTT 통합 지원책에 대해 업계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한 국내 OTT 관계자는 “서로 추구하는 방향과 수익 모델이 달라 현실적으로 유기적 협력이나 통합은 어렵다”고 말했다.
“민간 주도 생태계 조성해야”
티빙은 다른 OTT, 통신사들과의 협력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아직 정식 법인이 출범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통합 등을 논의하기는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티빙이 굳이 넷플릭스와 각을 세우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CJ ENM과 JTBC가 제작하는 콘텐츠에 이미 넷플릭스의 자금이 상당 규모 들어가고 있어 의존도가 크기 때문이다.스타트업 왓챠는 독자적인 플랫폼 역량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최근 19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 뒤 연내 일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왓챠의 주요 콘텐츠는 한국 영화다. 이를 발판으로 아시아 OTT 시장으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주도적으로 플랫폼 대형화를 이끌기보다는 민간이 자율적으로 제휴 협력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훈배 KT 커스터머신사업본부장(전무)은 “OTT 각사가 서로 다른 시장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일방적 합병 추진은 의미가 없다”며 “민간 자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줄 것을 당국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