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7월16일(07:02)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빚 부담에 허덕이는 가계가 올해 3분기에 뚜렷한 증가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소득 감소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행이 지난 13일 공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서베이’에 따르면 3분기(7~9월) 가계 신용위험 지수 전망치는 43으로 나타났는데요. 이 지수 값은 -100~100 범위 안에서 100에 가까울수록 전분기 대비 신용위험의 ‘증가’를 예상한 금융회사가 ‘감소’ 응답보다 많음을 의미합니다. 원리금 연체 증가를 우려하는 금융회사 대출 담당자가 그만큼 많다는 뜻입니다.
이 같은 전망은 2003년 3분기(44) 이후 17년(68개 분기)만에 최고라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끕니다. 2002년 집계 시작 이후 최고점을 찍었던 2003년 3분기는 ‘신용카드 사태’로 신용불량자가 쏟아져 나오던 때였습니다. 당시 카드사들은 무분별하게 현금대출(현금서비스, 카드론)을 확대했는데요. 생활고에 허덕이던 자영업자 등 많은 가계가 쉬운 대출에 몰렸고 결국 대규모 원리금 상환 실패로 이어졌습니다.
현재 한국의 상황이 카드사태 당시와 비슷하다는 사실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최근 금융회사들이 내놓는 대출 연체율이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무자 서베이 결과로 미뤄볼 때 낮은 연체율에 안심할 때가 아닌지도 모릅니다. 지금처럼 금리가 낮고 대출이 쉬운 때는 원리금을 새로운 빚으로 갚는 일이 많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연체율이 낮아 보이는 착시 현상이 나타나는 셈입니다.
카드사태 2년 전인 2001년에도 카드사 연체율은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을 보였습니다. 그러다 불과 2년 만에 대규모 부실이 터져나오면서 카드사들은 순식간에 유동성 위기에 몰렸습니다. 2003년 11월 21일에는 예고 없는 현금서비스 중단이라는 초유의 ‘LG카드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LG그룹은 이 사건 이후 금융사업을 접어야 했죠.
만에 하나 가계 신용이 2003년 수준으로 나빠진다면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은행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신용불량자(원리금 3개월 이상 연체자)는 2003년 말 기준 372만명에 달했습니다. 경제활동인구 2292만명의 16%를 웃돌았습니다. 그 결과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003년 3.1%로 전년(7.7%)의 절반으로 추락했습니다.
한국은행은 모두 199곳의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벌인 이번 서베이와 관련해 “(대출 담당자들은) 가계소득 감소에 따른 상환능력 저하로 저신용?저소득층 등 취약 차주를 중심으로 신용 위험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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