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5일 한국전쟁 70주년 기념사에서 일본을 우회적으로 비판해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문 대통령은 전날 성남공항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한국전쟁의 상흔과 이를 극복해온 대한민국의 저력을 거론하면서 "우리 민족이 전쟁의 아픔을 겪는 동안 오히려 전쟁특수를 누린 나라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전후 경제의 재건은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는 것만큼이나 험난한 길이었다"고 했다.
한국전쟁의 최대수혜자가 일본이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1945년 패망 이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던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를 국가재건 기회로 활용했다.
문 대통령이 70주년 기념식에서 '한국전쟁 특수'와 '식민지배'를 별도로 언급한 데는 최근의 한·일 관계와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이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2월 하노이 2차 미북정상회담이 결렬되고 6월 3차 정상회담마저 소득없이 끝나자 7월 전격적으로 한국에 대한 3대 핵심소재부품의 수출 제한조치에 나섰다. 남북미 중심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구조적 어려움에 봉착한 시점을 교묘하게 노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에 공개된 볼튼 전 보좌관의 회고록은 아베 정부가 끊임없이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훼방꾼'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방증하고 있다. 볼턴은 자신의 강경 주장을 야치 쇼타로 당시 일본 국가안보국장에 전하고 아베 총리가 이를 일본의 입장인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주입하는 소위 '쓰리 쿠션' 외교를 전개했다. '볼턴-야치-아베'가 한팀으로 움직이며 비핵화협상에 부정적 분위기를 조성한 정황은 볼턴의 회고록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볼턴 전 보좌관은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일본의 시각은 한국과 180도 달랐으며, 요약하면 내 시각과 비슷했다"고 소개했다. 야치 국장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 의지는 고정된 것이며, 평화적 해결을 위한 기회는 거의 마지막이고, 일본은 6자회담에서 합의한 ‘행동 대 행동’ 방식을 믿지 않는다"며 "북한의 비핵화 조치는 2년내에 마무리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볼턴 전 보좌관은 리비아의 비핵화 경험을 들어가며 보다 강경한 입장을 일본에 코치했다. 그는 2년을 시한으로 예정한 일본에 "북한의 비핵화는 6~9개월 내에 끝날 수 있다"고 화답했다. 2018년 4월 플로리다 마라라고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는 "6~9개월내 북한의 비핵화가 완료되어야 한다"며 볼턴의 주장을 자신의 의견처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싱가폴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뤄진 미일 정상간 통화(2018 5.28)에서 아베 총리는 마라라고에서 제기한 모든 요소를 재차 제기하며 "김정은을 믿지 않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보다 더욱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거듭 요청했다고 볼턴은 전했다.
볼턴 전 보좌관의 주관적 의견인만큼 회고록을 100%신뢰하기는 어렵지만 일본 정부가 남북미의 한반도 프로세스 노력에 굉장히 부정적이었다는 것만큼은 책 곳곳에서 확인된다.
문 대통령이 6·25 기념사에서 직접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한국전쟁의 특수를 누린 나라'로 칭한 것은 이처럼 한반도의 분열과 대립 구도를 기회로 삼는 듯한 일본에 대한 불편한 시각을 반영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