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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반도체 위기론'은 엄살일까 진짜일까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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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한 위기상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 지난 19일 경기 화성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를 방문해 한 말이다. 그는 "미래 기술을 얼마나 빨리 우리 것으로 만드느냐에 생존이 달려있다"며 "시간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이 말한 '반도체의 위기 상황'과 '미래 기술'은 무엇일까. 이 부회장의 '반도체 위기론'은 엄살일까 진짜일까.

삼성 반도체의 세가지 위기

삼성 반도체 사업을 둘러썬 대내외 환경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를 둘러싼 '신냉전'이다. 미국 정부가 중국 화웨이의 반도체 제조를 원천 차단하기로 하면서 삼성에도 불똥이 튈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 받고 있는 것이다.

벌써 삼성에 대한 양쪽의 회유와 압박은 시작됐다. 대만 IT 전문매체 디지타임즈에 따르면 중국 화웨이는 삼성전자에 △통신칩을 공급해줄 것 △화웨이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설계한 반도체를 생산해줄 것을 요청했고, 삼성전자가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삼성에선 이 같은 보도에 대해 "고객 관련 사항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지만 반도체 업계에선 "가능성이 충분한 얘기"란 평가가 나온다.

미국도 지속적으로 자국에 대한 투자를 간접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삼성에 추가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을 지으라고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 입장에선 '풀기 어려운 문제'다. 이미 평택에 10조원 규모 파운드리 라인 추가 투자를 결정한 상황에서 미국에 더 투자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위기는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약진이다. 중국 YMTC, CXMT 등 메모리반도체(D램, 낸드플래시) 업체들은 앞다퉈 신제품 출시를 예고하고 있다. 최근엔 세계 5위 파운드리업체 중국 SMIC가 대규모 자금조달을 통해 공정 미세화에 힘쓰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들도 중국 업체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대해 "시장 변화의 모멘텀이 될 것"이라며 경계하고 있다.

셋째는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를 제외한 사업) 사업에 대한 견제다.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한 파운드리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만 TSMC는 2분기 전망치 기준 51.5%의 세계 시장 점유율로 2위 삼성전자(18.8%)와 격차가 상당하지만,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파운드리 기술의 척도는 공정의 미세화다. 미세화 수준은 반도체 트랜지스터에서 전류의 흐름을 컨트롤하는 채널 폭(선폭)으로 나타내는데, 최근엔 7나노미터(nm, 10억분의 1m) 공정에서 더 미세한 5nm 공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 7nm 공정이 가능한 파운드리 업체는 전 세계에서 TSMC와 삼성전자 밖에 없다.

5nm 공정에서 TSMC에 밀린다

5nm 공정에서 만들어진 반도체는 7nm보다 전력효율이 좋고 작게 만들 수 있다. TSMC나 삼성전자에 반도체 생산을 주문하는 퀄컴 같은 업체에선 성능이 뛰어나고 기존 제품보다 더 작은 반도체를 만들 수 있으니 이익이다. 파운드리업체도 한 웨이퍼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만들 수 있으니 생산성이 높아지는 효과를 얻는다.

5nm 공정은 하반기부터 본격화할 전망인데, 반도체 업계와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TSMC가 삼성전자를 압도하고 있다. 수주 소식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는데, TSMC는 세계 1위 자동차용 반도체업체 네덜란드 NXP의 5nm 공정생산 제품을 수주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차세대 아이폰의 두뇌역할을 하게 될 애플 A14 프로세서 생산과 퀄컴의 5G 모뎀침 X60 일부 물량도 5nm 공정용으로 수주했다고 한다. 미국 AMD GPU 생산물량도 TSMC가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TSMC에 비하면 초라한 상황이다. 5nm 외부 수주(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물량 제외)는 퀄컴의 X60 모뎀칩(TSMC와 공동수주), 엔비디아 GPU 정도다. TSMC라는 거인의 벽 때문에 추가 고객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파운드리 사업의 돌파구는 '기술' 뿐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미래 기술을 얼마나 빨리 우리 것으로 만드느냐에 생존이 달려있다"며 "시간이 없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다. 기술력을 발휘해 TSMC가 생산하는 제품보다 고성능, 저(低)전력, 초소형 반도체를 만들 수 있어야 TSMC로부터 고객을 빼앗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TSMC와 대등한 기술을 갖춘 수준에선 순수 파운드리 업체인 TSMC를 이기는 게 쉽지 않다는 게 반도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퀄컴, 애플 등이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물건을 맡길 땐 '기술 유출' 등을 우려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TSMC를 능가하는 '압도적' 기술력이 필요한 이유다.

게이트와 채널 맞닿은 면적 넓히는 게 기술 숙제

이재용 부회장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3nm 공정 기술이라고 한다. 3nm 공정 구현을 위해선 GAA(Gate-All-Around)라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는 반도체에서 전류를 흐르게 하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트랜지스터와 관련이 있다.

트랜지스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게이트'다. 게이트에 전압을 가하면 게이트와 맞닿아 있는 '채널'이 전기의 길을 열고 반대의 경우 전류를 차단한다. 반도체의 성능은 게이트와 채널에서 누설전류를 얼마나 줄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느냐에 갈린다고 한다. 정리하면 트랜지스터에서 전류를 컨트롤하는 게이트와 채널이 닿는 면적이 클수록 전력 효율성이 높아진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과거에 많이 쓰던 '평판' 트랜지스터는 게이트와 채널이 하나의 면으로 맞닿아 있는 '2D' 구조다.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될수록 트랜지스터 크기가 줄고, 게이트와 채널이 맞닿는 면적도 작아져 제 역할을 못하는 문제가 늘었다.

그래서 개발한 게 채널을 건물을 세우듯 올려서 게이트와 채널이 맞닿는 면적을 높인 구조다. 이를 핀펫(FinFET·사진)이라고 부른다. 채널 모양이 지느러미(Fin)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게이트와 채널 간 접하는 면이 넓을수록 효율이 높아진다는 점에 착안해 '평면'이 아닌 '3면에서 맞닿는' 구조로 바꾼 것이다. 핀펫구조는 5nm 공정까지는 활용할 수 있다.

'GAA' 기술로 돌파해야



문제는 5nm보다 더 미세한 4nm 공정에선 핀펫구조의 한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삼성전자가 2018년 개발한 미래 기술이 GAA다. GAA는 3면에서 채널과 게이트가 접했던 핀펫구조와 달리 게이트가 채널 4면을 둘러싸게 한 것이다. 좀 더 세밀하게 전류를 조정할 수 있게해 높은 전력효율을 얻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작년 파운드리포럼에선 GAA보다 더 진화한 'MBCFET'을 발표했다. 이는 GAA보다 게이트와 채널이 맞닿는 면적을 더욱 넓게 한 것이다. 1nm 공정에서 활용할 예정이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MBCFET 공정은 현재 7나노 핀펫 공정에서보다 소비전력이 50% 줄고, 성능이 35% 뛰어난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앞으로 반도체는 AI(인공지능), 빅데이터,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등의 영역에서 활용될 전망이다.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반도체사업의 성패는 고성능·저전력·초소형 반도체를 만드는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로 판가름난다. 더 많은 고객의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생산하고(파운드리), 성능이 뛰어난 AI칩, 자율주행칩 등을 만들어 자동차업체 등에 납품하려면 경쟁자를 압도하는 기술력이 필수라서다.

이 부회장이 최근 연이어 반도체 사업장을 방문해 '위기'를 얘기하고 미래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메모리반도체 사업에선 중국 업체들의 추격을 뿌리치고 시스템반도체 영역에선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 TSMC, 팹리스(설계 전문 업체) 세계 1위 퀄컴 등을 따라잡기 위해서다. 현재 삼성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결코 '엄살'로 볼 수 없다는 게 반도체 업계의 공통된 평가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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