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한숨을 돌렸다. 법원이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하면서 구속은 피할 수 있게 됐다. 삼성 내부에선 "그나마 다행"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하지만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검찰이 제시한 혐의를 법원이 인정한 만큼 정식 재판에서 치열한 공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에서 출발한 이번 수사는 1년8개월간 이어졌다. 이 부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어떤 불법적인 내용도 받거나 지시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장 청구 이틀 전인 지난 3일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하기도 했다. 검찰 수사가 정당했는지를 외부에서 판단해달라는 의미였다. 삼성으로선 '괘씸죄'를 무릅쓰고 초강수를 뒀다.
이 부회장이 강하게만 나온 건 아니다. 지난달 6일 대국민 사과를 통해 '무노조 경영'을 공식화하고 시민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자녀에게 경영권을 승계할 의사가 없다는 점 역시 분명히 했다. "불법은 아닐지라도 편법인 것은 분명하다"고 여기는 국민에게 고개를 숙이고 과거의 잘못을 반성했다. 이 부회장의 진정성이 법원의 영장 기각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을 것이란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구속은 피했지만 이 부회장을 둘러싼 법률 리스크는 여전하다. 검찰이 보충 수사를 통해 증거를 보충한 뒤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이 이뤄진다고 해도 삼성 측에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사건과 별도로 진행 중인 국정농단 사건의 파기환송심도 남아 있다. 법원의 불구속 결정에도 삼성이 불확실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우려하는 이유다.
삼성은 내우외환의 상황에 빠져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시장이 얼어붙은 데다 미·중 무역분쟁과 한·일 갈등까지 표면화했다. 미래 준비를 위한 과제도 쌓여 있다. 대규모 반도체 투자와 미래를 겨냥한 인수합병(M&A) 등 수십조원이 오가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이 부회장의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인 셈이다.
삼성 관계자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에 반발한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을 다시 막을 수도 있고, 미국이 화웨이 외 중국 기업과의 거래 중단을 종용할 수도 있다"며 "삼성 총수가 법률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