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13년 12월 ‘해외진출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유턴기업법)을 시행한 뒤 국내에 돌아온 업체는 총 80곳. 이 가운데 조업 중인 곳은 41개뿐이다. 9곳은 폐업하거나 투자를 철회했다. 나머지는 지지부진한 투자 절차를 밟고 있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 카드로 해외에 진출한 기업을 국내로 유인하기 위한 리쇼어링(본국 회귀)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업계에선 이를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한 유턴기업 대표는 “앞서 들어온 기업이 줄줄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 해외에 있는 기업들이 국내로 돌아올 엄두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돌아온 걸 후회합니다”
2013년 중국에서 유턴한 전북 군산의 굴삭기 부품 제조업체 파워이앤지는 지난해 5월 폐업했다. 공장 준공이 지연돼 자금난을 겪다가 2016년 5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지만 회생에 실패한 채 사업을 접었다. 이 회사를 운영하던 장영문 사장은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는 “중국에서 한때 500억원대 매출을 올렸지만 한국에 돌아와 거래처와 경쟁력을 모두 잃었다”고 말했다. 장 사장은 산업통상자원부, 전라북도, 군산시를 상대로 투자금반환청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폐업을 고민하는 유턴기업도 늘고 있다. 2016년 중국에서 세종시로 돌아온 유압 실린더 전문 제작업체 A사도 그중 하나다. 이 회사 대표는 “국내에 돌아온 뒤 상주 직원 45명을 고용하지 못해 고용보조금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지방에 와서 일할 실린더 기술자를 구하지 못해 중국에서 함께 일하던 현지 기술자를 몰래 데려와 쓰다가 벌금 1400만원을 문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열악한 사업 환경을 미리 알았더라면 세종시에 공장을 짓지 않았을 것”이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해외에서 탄탄했던 기업도 한국의 사업 환경을 모른 채 들어오면 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유턴기업의 무덤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지난해 중소기업의 해외투자 금액은 618억4700만달러를 기록했다. 전년(510억9900만달러) 대비 21% 늘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2013년 유턴기업법 시행 후에도 해외로 나가는 중소기업이 국내로 들어오는 기업보다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관건
유턴기업법 시행 초기인 2014년 20개였던 유턴기업 수는 이듬해부터 10개 안팎으로 떨어졌다. 정부는 2018년 11월 고용보조금 등 인센티브 강화를 골자로 한 유턴기업 종합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해 12월 유턴법 개정과 올 2월 코로나 수출 대책 마련 등을 통해 제도를 보완했다. 지원대상 업종을 제조업에서 정보통신업과 지식서비스업으로 넓히고, 대상 기업을 국내 사업장을 신설한 회사뿐 아니라 증설한 업체로까지 확대한 게 주요 내용이다. 대기업도 지원 대상에 포함했다.
지난 1일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추가로 리쇼어링 지원 요건을 완화했다. 해외사업장을 25% 이상 축소해야 한다는 조건을 없애고 생산량 감축에 비례해 세금 감면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해외 생산시설의 1%만 국내로 들여와도 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하지만 수도권 공장총량제 등 수도권 입지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업계 요구는 외면했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국내 유턴기업을 첨단제조업과 고부가가치 지식서비스 기업으로 확대하려면 고급 인재 확보가 필수”라고 했다. 그는 “인재 확보를 위해선 수도권으로도 기업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벽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로 돌아온 유턴기업들도 정부의 유인책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KOTRA가 유턴기업을 대상으로 지난 4월 설문조사한 결과, 지원 확대가 필요한 정책으로 응답자의 36%가 투자보조금을 꼽았다. 세제 지원(20%), 자동화설비 지원(15%), 환경규제 완화(14%), 금융 지원(11%) 등이 뒤를 이었다. 맹수석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규모 재원을 마련해 과감하고 파격적인 지원에 나서야 리쇼어링 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턴기업 지원계획을 기업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수정해야 한다는 처방도 나온다. 광주의 한 공기압축기 제조업체 관계자는 “투자심사완료보고서를 제출하면 5년간 해당 내용을 그대로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고용인원, 설비 등을 경영상황에 따라 조절하기 어렵다”고 했다.
해외로 진출한 기업들이 다시 돌아오려면 무엇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산업계는 입을 모은다. 주 52시간 근로제 관련 특별연장근무를 월 100시간까지 인정해주거나, 지난 3년 동안 32.8%나 오른 최저임금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등 경영환경 개선을 위한 규제 혁파가 필수라는 지적이다.
민경진/서기열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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