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유상증자 1조원과 정부 지원 1조2000억원 등을 포함한 2조2000억원 규모의 자금 확충에 나선다. 조(兆) 단위의 유상증자는 1962년 대한항공 설립 이후 처음이다. 정부가 지난달 1조2000억원의 대규모 금융 지원을 약속한 만큼 이에 상응하는 자구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최대 규모 1조원 유상증자대한항공은 13일 이사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유상증자 안건을 통과시켰다. 새로 발행하는 주식 수는 7936만5079주다. 주당 발행가격은 1만2600원으로, 최종 발행가액은 오는 7월 6일 확정된다. 신주 상장은 7월 29일 이뤄진다. 회사 측은 기존 주주의 지분 비율에 따라 신주인수권을 우선 부여하는 ‘주주배정’으로 증자를 진행한 후 실권주가 생기면 일반공모로 돌릴 계획이다.
이번 유상증자는 대한항공 창사 이후 최대 규모다. 대한항공은 2015년과 2017년에도 각각 5000억원, 4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했다. 대한항공이 1조원 증자에 성공하면 지난해 4분기 871%에 달했던 부채비율은 600%대로 낮아질 전망이다.
대한항공은 이날 정부가 발표한 지원안 실행도 결의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지난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대한항공에 △항공화물 매출채권을 담보로 하는 자산유동화증권(ABS) 7000억원 △주식전환권이 있는 영구채권 3000억원 △자산담보부 차입 2000억원 등 총 1조2000억원 규모의 긴급 지원안을 발표했다.
이번 대규모 유상증자는 정부 지원에 맞춰 한진그룹이 마련한 자구책이다. 두 은행은 한진그룹이 자구안을 내놓는 조건으로 이 같은 지원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전 임원이 최대 50%의 급여를 반납한 데 이어 직원 70%가량이 6개월 휴업을 실시하고 있다”며 “추가 자본 확충을 위해 유휴자산 매각·사업 재편·선불 항공권 판매 등 유동성 확보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진칼 자금 마련이 관건대한항공 이사회가 유상증자 안건을 통과시킴에 따라 지주사인 한진칼도 자금 마련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한진칼은 대한항공 지분 29.96%(보통주 기준)를 보유하고 있다. 주주배정 시 최대 3000억원의 유상증자 대금을 마련해야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한진칼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411억원 수준이다. 추가로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실권주가 대량 발생할 수 있다. 한진칼은 14일 이사회를 열고 대한항공 유상증자 참여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당장 결론을 내지 못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KCGI(강성부펀드)·반도건설·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 ‘3자연합’과의 경영권 분쟁도 걸림돌이다. 대한항공에 이어 한진칼도 자금 마련을 위해 유상증자에 나설 경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현재 지분율을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조 회장은 600억원의 상속세를 내야 하는 데다 우호세력으로 분류됐던 델타항공·GS칼텍스 등도 코로나19 영향으로 참여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틈에 3자연합이 한진칼 유상증자에 참여하면 지분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가 될 수 있다. KCGI는 이달 한진칼에 “주주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하면 참여할 의사가 있다”는 내용증명서를 보낸 상황이다.
대한항공의 자금난이 이번 유상증자만으로는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있다. 대한항공이 유상증자로 1조원을 마련하고, 정부 지원금 1조2000억원을 더하면 2조20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하게 된다. 하지만 대한항공이 5~6월에 회사채·금융 리스·이자·ABS·은행 차입 등으로 상환해야 할 채무만 8700억원 이상이다. 여기에 항공기 리스료 등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비도 5000억~6000억원에 달한다. 반면 코로나19로 전체 매출에서 70%를 차지하고 있는 여객 매출은 80% 이상 줄어들었다. 대한항공이 서울 송현동 부지를 비롯해 비주력 자산을 매각해 추가 유동성을 확보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어렵다는 분석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상반기 안에 진정되지 않으면 대한항공이 추가로 호텔 매각 등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