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경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휘청이고 있다. 회사채 부도 위험성이 커지고, 글로벌 투자 자금은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다. 신흥국 부채 규모가 역대 최대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자금 수혈을 받는 국가도 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아홉 번째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에 몰려 있는 등 신흥국발(發) 글로벌 경제의 연쇄 타격 우려도 나오고 있다.
회사채 부도 가능성 높아져
12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글로벌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내년 3월까지 신흥국 투기등급 회사채의 부도 가능성을 8.3~13.7% 수준으로 전망했다. 기존 전망치는 7.8~11.2%였다. FT는 “부도율이 13.7%까지 올라가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록했던 13.6%를 넘는 것”이라고 전했다.
조이스 장 무디스 애널리스트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많은 기업의 공장 폐쇄가 이어졌다”면서 “글로벌 수요 붕괴까지 겹치며 신흥시장 기업들은 돈줄이 마르고 수익성이 나빠졌다”고 지적했다. 무디스는 신흥국 일부 소매업과 석유, 가스 등의 분야에서 디폴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JP모간도 신흥국 회사채 위험도가 높아지면서 채권 금리가 상승(가격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 국채와 신흥국 투기등급 회사채의 금리 격차는 7%포인트까지 벌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기존 금리 격차 예상치는 4.45%포인트 수준이었다. 스티븐 덜레이크 JP모간 신용리서치부문 글로벌 대표는 “신흥국들의 국채 금리 상승이 기업 채권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신흥국 금융시장에서는 글로벌 투자 자금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국제금융협회(IIF)의 보고서를 인용해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올 1월 20일부터 4월 29일까지 100일간 신흥국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1000억7000만달러(약 122조8000억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같은 기간의 자금 유출 규모(236억달러)보다 4.2배가량 많다. 급속한 자금 유출은 신흥국들의 통화 가치도 빠르게 떨어뜨리고 있다. 미 달러화 대비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지난해 말과 비교해 27%가량 하락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와 멕시코 페소화 가치도 각각 25%가량 떨어졌다.
코로나19로 신흥국 재정 악화
신흥국 재정도 악화일로다. 각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 지출을 늘리고 있는 탓이다. 말레이시아는 국내총생산(GDP)의 18%에 이르는 경기부양책을 내놨다. IMF는 올해 신흥국들의 재정적자가 GDP 대비 8.9%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금융협회에 따르면 현재 신흥국들의 총 부채는 역대 최대 규모인 71조달러(약 8경7060조원)가량이다. 경제연구기관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2007년 GDP 대비 70% 정도였던 신흥국 부채가 165% 수준으로 치솟았다고 분석했다. FT는 “중소 신흥국 시장인 프런티어마켓도 지난 10여 년간 채권 발행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신흥국이 몰려 있는 중남미에서는 코로나19 위기 속에 IMF의 긴급 자금 지원을 받는 국가가 늘고 있다. 스페인 EFE통신은 이날 중남미·카리브해 지역 11개국이 IMF로부터 긴급 대출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도미니카공화국 6억5000만달러, 에콰도르 6억4300만달러, 파나마 5억1500만달러 등이다.
아르헨티나는 최근 650억달러 규모의 채무 재조정 협상에 난항을 겪으며 아홉 번째 디폴트 위기에 몰렸다. 앞서 아르헨티나는 채권단에 채무 상환 3년 유예, 이자 62%와 원금 5.4% 삭감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채권단과 견해차가 커서 합의가 불투명하다. 아르헨티나는 오는 22일까지 총 5억달러 규모의 국채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이날까지 이자를 내지 못하면 2014년 이후 6년 만에 디폴트에 빠지게 된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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