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된 이후 주요국 소매금융은 사실상 ‘셧다운’됐다. 반면 국내 금융 소비자들은 큰 불편을 겪지 않았다. 기업은 예전처럼 간단하게 거래 대금을 주고받았고, 개인도 스마트폰 앱으로 ‘급전’을 빌렸다. 오프라인 소비가 줄었지만, 전자상거래와 배달업 등의 매출은 대폭 증가하기도 했다. 금융권에 확산된 비대면 정보기술(IT) 덕택이라는 평가가 잇따랐다.
‘K금융’은 한국이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데도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다. 국내 카드사들은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지 열흘 만에 질병관리본부에 카드 정보 등을 전달해 확진자 동선 파악에 기여했다. ‘매출 절벽’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를 돕기 위한 은행들의 ‘이차보전 대출’도 빛을 발했다.
K금융, 위기 때 빛났다과거 한국 금융업의 특징은 ‘관치(官治)와 톱다운식 내부 의사결정, 일사불란함’ 등으로 요약됐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평가가 달라졌다. 그동안 쌓아온 IT 금융 역량이 전면에 부각됐다. 최근 국내 금융사들에 ‘위기 대응 매뉴얼과 비대면 노하우를 전수해달라’는 해외 금융사 문의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K금융’의 위력은 해외에서도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해소된 2010년 이후 국내 금융사들은 동남아시아 진출에 공을 들였다. 속속 성과가 나오고 있다. 신한베트남은행은 지난해 국내 금융사 해외법인 중 가장 많은 1243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총자산은 40억달러가량으로 베트남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 중 1위다. 1794명의 직원 중 97%가 베트남 사람일 정도로 현지화 전략을 폈다.
국민은행이 지난해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내놓은 간편결제 앱 리브페이의 고객 수는 지난달 말 기준 10만 명을 넘어섰다. 우리은행은 베트남 스마트폰 사용자를 대상으로 ‘인증서 없는 간편이체’, 휴대폰을 흔들어 거래할 수 있는 ‘모션뱅크’ 등 새로운 기능을 가미한 앱을 선보였다.
비씨카드는 지난해 중국 유니온페이를 물리치고 베트남 신용결제협회인 나파스(NAPAS)에 QR코드를 활용한 신용결제망을 공급하는 파트너로 선정됐다. 독자적 결제망을 갖추려는 베트남 정부를 적극 돕겠다고 피력한 점이 주효했다. 하나금융의 글로벌 간편결제망인 글로벌로열티네트워크(GLN)는 ‘해외결제를 할 때마다 왜 비자, 마스터에 1%의 수수료를 물어야 할까’라는 고민의 산물이다. 회원사 고객이라면 국가에 상관없이 수수료 없는 QR코드 기반의 간편결제를 할 수 있다. 현재 14개국 47개 금융사가 네트워크에 가입돼 있다.
해외 진출은 ‘선택’ 아니라 ‘필수’국내 은행의 해외 순이익은 2014년 6억3000만달러에서 2019년 9억8800만달러로 5년 새 40%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국내 증권회사의 해외 순이익은 1억8240만달러로 13배 증가했고, 해외에서 손실만 보던 보험업도 흑자전환했다. 하지만 아직 해외 수익 비중은 전체의 10%를 밑돈다. 해외 진출을 서둘렀던 미쓰비시UFJ파이낸셜 등 일본 대형금융사들의 해외 이익 비중은 30%에 달한다. ‘한국 금융업은 이익 포트폴리오가 국내에 편중돼 있고, 이자율 하락으로 마진이 적어지고, 새로운 성장동력도 찾지 못하는 삼중고에 처해 있다’(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아세안금융연구센터장)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국내 금융사들은 신용결제 비중이 높고, IT가 발달한 ‘K금융의 노하우’를 앞세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한다는 전략이다. 조남훈 KB금융 글로벌전략총괄 전무는 “경제 성장률과 인구 증가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금융업의 해외 진출은 필연이 될 수밖에 없다”며 “국내 금융사들도 비대면 금융 기술 등을 토대로 해외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대훈/박진우/송영찬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