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22분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공식 브리핑을 한 시간이다. 지난달 첫 브리핑 이후 최단 시간인 22분만에 브리핑룸을 빠져나가버렸다. 평소 기자들과 설전을 즐기던 모습도 없었다. 아예 질문을 따로 받지 않았다.
'살균제 인체 주입 검토' 발언으로 미국 안팎이 발칵 뒤집힌데 따른 후폭풍이다. 시작은 살균제 주입과 자외선 노출을 검토해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23일(현지시간) 브리핑 발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표백제가 침 속에 들어있는 바이러스를 5분 안에 죽였고, 살균제는 이보다 더 빨리 바이러스를 잡아냈다는 연구 결과에 흥미를 보였다. "주사로 살균제를 몸 안에 집어넣는 방법 같은 건 없을까. 폐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지 확인해보면 흥미로울 것 같다"는 비과학적 발언을 불쑥 쏟아낸 것이다.
표백제나 살균제는 몸 속으로 들어갈 경우 심각한 조직 손상을 야기하고, 심할 경우 사망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 독성물질로 널리 알려져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미국 대통령이 공식 브리핑 자리에서 충동적으로 꺼낸 행위 자체가 전 세계 많은 생명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논란을 낳았다.
화들짝놀란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살균제를 부적절하게 사용해선 안된다는 경고문을 올리며 진화에 나섰다. 미 식품의약국(FDA)도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띄워온 하이드록시클로로퀸 등 약물에 대한 심각한 부작용을 경고하고 나섰다.
민주당도 곧바로 공격에 나섰다. '트럼프 탄핵' 저격수로 유명한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의장은 "대통령이 사람들에게 라이솔을 폐에 주입하라고 한다"며 "대통령은 의료 전문가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누구에게 귀를 기울이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미 공영라디오 NPR 인터뷰에서 "돌팔이 약장수가 TV에 나온 것 같다. 폐에 살균제를 주입하라니"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돌출 발언은 들불처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퍼지며 일파만파 논란이 확산했다.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코로나19 치료 효능을 극찬해온데 이어 또다시 비과학적인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코로나도 트럼프 리스크'라는 말이 다시 나올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 같은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했다. 이날 오후 5시 40분께 시작한 브리핑에서 자신의 인사말에 이어 스티븐 한 식품의약국(FDA) 국장,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발언이 끝나자 별도의 질문을 일절 받지 않고 22분만에 퇴장했다. 추가 질문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을 '미스터 프레지던트'라고 불러 세우는 취재진에 일절 답하지 않았다. 평소 기자들과 과격한 언쟁을 벌이며 1시간, 많게는 2시간 넘게 브리핑을 해온 점에 비하면 전례 없던 일이다.
이와 관련 미국 현지 언론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몇 주간은 2시간을 넘나드는 '트럼프 쇼'가 연출됐지만, 살균제 발언 역풍으로 힘든 하루를 보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질문을 받지 않고 브리핑장을 떠나는 극히 이례적인 행동을 했다"고 평가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살균제 발언 후폭풍에 기분이 상한 상태라고 전했다.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이날을 시작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TF 브리핑을 축소할 계획이라고 내부 논의에 정통한 4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김민성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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