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미국 영국 등에서 사재기 광풍이 불면서 마트 등의 텅 빈 매대 사진이 한때 충격적으로 보도됐다. 한국은 달랐다. 사태 초기 잠시 사재기가 있었지만 빠른 속도로 정상화됐다. 생필품 제조가 넉넉했던 이유도 있지만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의 소싱 능력과 이들이 전국에 촘촘하게 깔아놓은 배송 그물망이 굳이 사재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대형마트 등이 구축해놓은 ‘사회적 인프라’가 국난 극복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이런 복합몰과 대형마트들이 4·15 총선 이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이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밀어붙일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어서다. 더불어민주당과 민주당의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은 공동 정책 공약 1호로 ‘복합 쇼핑몰의 출점·영업 제한’ 법안을 공언했다. 이 공약은 도시 계획 단계부터 신세계의 스타필드, 롯데쇼핑의 롯데몰 등과 같은 대형 복합쇼핑몰의 입지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대형마트를 대상으로 시행 중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 휴업 규제를 복합쇼핑몰, 아울렛 등으로 확대 적용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한 유통업체 임원은 “이제는 입법을 기정사실화하고 그에 맞춰 사업 계획을 다시 짜려고 한다”며 “정치권이 코로나 등으로 생존 기로에 몰린 유통업계를 낭떠러지로 몰고 있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코로나 등으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롯데쇼핑은 매장 200개를 없애는 등 고강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국내 1위 대형마트인 이마트도 2016년 147개였던 매장을 지난해 142개까지 줄였다. 대형마트 점포당 직접 고용 인원은 약 200명. 판촉사원 등 협력업체 직원까지 합하면 500여 명에 달한다. 매장 200개가 문을 닫으면 최대 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규제 강화로 상황이 악화되면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 1호로 정한 고용과 일자리 창출 목표 달성이 어렵게 된다. 또 대형 유통업체 규제를 강화한다고 해서 골목상권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골목상권과 복합몰은 위치도 다르고, 주요 판매상품도 다르다. 이제 ‘골목상권 보호=대형마트 규제’ 프레임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는 주장이 여권 내에서 나오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와 여당이 간과하고 있는 게 또 있다. 사람들은 복합쇼핑몰과 마트 등에 단지 물건을 사러 가는 게 아니다. ‘놀러’ 가는 사람이 더 많다. 관광 인프라가 부족한 한국에서 이미 쇼핑몰은 대표적인 관광 인프라가 돼 가고 있다.
대형마트나 복합쇼핑몰은 코로나 극복과 관광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더 할 수 있도록 장려하면서 소상공인 보호 문제는 대형마트와 복합몰 내 ‘숍인숍’ 형태로 협업을 통해 따로 풀어나가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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