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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의 기업워치]코로나에 발목 잡힌 태평양물산, 물 건너간 '라이징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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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04월14일(13:24)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태평양물산이 투기등급을 벗어나는 데 실패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발목을 잡혀서다. 태평양물산은 빠르게 재고자산을 털고 재무상태를 개선해 시장 안팎에서 올해 첫 라이징 스타(rising star, 투기등급 탈피 기업)로 올라설 것이란 기대를 받았다.

1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한국기업평가는 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 태평양물산의 신용등급 전망을 종전 긍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조정했다. 태평양물산의 신용등급 상향 조정 가능성을 철회한 셈이다.

태평양물산은 올해 투기등급에서 투자등급으로 올라설 수 있는 유일한 기업으로 꼽혔다. 투기등급의 상단에 있으면서 긍정적 등급전망을 달고 있는 기업은 태평양물산 뿐이었다. 태평양물산의 신용등급은 BB+다. 한 단계만 올라도 BBB급에 진입한다.

한 단계 차이지만 채권시장에서 BB+와 BBB-은 엄격하게 구분된다. 투자등급에서 투기등급으로 떨어지는 기업에 폴른 엔젤(fallen angel), 투기등급에서 투자등급으로 도약한 기업을 라이징 스타라고 별도로 이름 붙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태평양물산은 1972년에 설립된 의류 OEM 업체다. 갭과 콜롬비아 등 글로벌 브랜드와 장기 거래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엔 언더아머와 푸마 등으로 고객군을 다변화하고 있다. 국내 의류 OEM 업체 중 글로벌세아, 영원무역, 한세실업, 한솔섬유에 이어 5위(연결 매출 기준)다. 이와 함께 오리·거위 털을 방한 의류나 침구류 소재로 가공하는 우모 가공 사업도 주력으로 한다. 우모 가공 부문은 50% 안팎의 내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2017년 이전 까지만 해도 우모 가공 사업은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했다. 2015년 이후 국내 아웃도어 수요가 위축되면서 가격이 급락했다. 이 때문에 재고자산 평가손실과 판매손실이 발생해 영업적자를 냈다. 하지만 2017년 이후 우모 가공 사업 부문의 재고자산이 줄고 최대 생산국인 중국의 환경 규제와 중국 내수 수요 증가로 우모 가격이 오르면서 상황이 나아졌다. 2016년 -5.6%였던 영업이익률이 2018년엔 3.3%로 개선되더니 지난해에는 4.4%까지 올랐다. 의류 OEM 신설 법인의 생산성이 향상된 영향도 있다.

의류 OEM 사업 부문을 중심으로 이익창출능력이 개선되면서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대비 순차입금 비율은 낮아지고 있다. 2017년엔 6.7배였는데 2018년엔 5.4배, 지난해에는 4.8배까지 내려왔다. 한국기업평가는 태평양물산의 신용등급 상향 조정 조건 중 하나로 순차입금/EBITDA 비율이 7배 이하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을 제시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문제였다. 지난달 이후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글로벌 경기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덩달아 의류 OEM 업체의 수출 부문에 대한 실적 악화 우려도 높아졌다. 태평양물산은 동절기 제품을 주로 생산하고 있어 아직 수주 감축 요청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 수주나 매출 역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게 한국기업평가의 판단이다.

차입금 증가세도 태평양물산의 신용도 향상을 가로 막았다. 지난해 말 기준 태평양물산의 총차입금은 3217억원이다. 2017년 2000억원대로 내려왔다가 다시 증가세다. 생산 시설 확충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 탓이다. 차입금의존도가 50%를 웃돌고 있어 절대적인 수준이 과한 편이다.

일각에선 신용평가사 간 의견이 갈린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신용평가사인 한국신용평가는 태평양물산에 이미 안정적 등급전망을 매기고 있다. 신용평가사별로 신용등급이나 등급전망이 갈릴 순 있지만 투기등급과 투자등급으로 나뉘는 건 한국기업평가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김혜원 한국기업평가 선임연구원은 "수주 물량의 예측 가능성이 낮아졌고 환율 등 사업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태평양물산의 거래처들이 코로나19가 올 3분기 이후까지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하는 경우 동절기 제품 발주 물량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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