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이 회계법인 딜로이트안진을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달 말 미국 회계감독위원회에 고발한 데 이어 ‘강공’을 쏟아내고 있다. 딜로이트안진은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사진)과 재무적투자자(FI) 간 ‘풋옵션(주식을 정해둔 가격에 팔 권리) 분쟁’의 핵심 쟁점인 풋옵션 행사가격을 산출한 업체다.
처음에는 백기사였는데…
교보생명은 딜로이트안진을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고 9일 발표했다. 딜로이트안진이 FI의 의뢰를 받아 기업가치 평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공인회계사로서의 공정·성실 의무를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교보생명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지우는 고발장에서 “안진이 산정한 풋옵션 행사가격(FMV)은 의뢰인이 부당한 이득을 얻게 하도록 가담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산정할 수 없는 금액”이라며 “공인회계사법 위반을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가 다수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갈등의 시작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보생명 최대주주인 신 회장은 2012년 9월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IMM프라이빗에쿼티, 베어링PEA, 싱가포르투자청 등 FI 컨소시엄과 풋옵션이 포함된 계약을 맺었다. 이들 FI는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하고 있던 교보생명 지분 24.01%를 주당 24만5000원에 사들였다. 교보생명이 2015년 말까지 상장하지 않으면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이때만 해도 FI 컨소시엄은 신 회장의 ‘백기사’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다.
문제는 교보생명 상장이 계속 미뤄지면서다. 2018년 10월 FI들은 풋옵션을 행사해 신 회장에게 주식을 되살 것을 요구했다. 딜로이트안진이 산출한 풋옵션 행사가격은 주당 40만9912원이었다. 신 회장은 이 가격을 납득할 수 없다며 주식 매수에 응하지 않았다. 계약의 적법성·유효성도 부족하다고 맞섰다. 지난해 3월 FI 측은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에 중재를 신청했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중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교보 “과대평가” vs 안진 “문제없다”
딜로이트안진은 행사가격 산출 기준 시점을 2018년 6월 30일로 잡고, 직전 1년간 삼성생명과 오렌지라이프 등의 주가를 반영했다. 딜로이트안진 측은 “가치 산정은 관련 기준에 부합하게 진행했고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교보생명은 “강제성이 있는 옵션 행사가격에 대한 평가는 일반적인 기업 가치평가와 달리 행사일을 기준으로 산출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고 했다. 굳이 보험업계 주가가 고점이었던 2017년 말~2018년 초를 기준으로 삼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교보생명은 그동안 회사 차원의 대응을 자제해왔다. 계약 당사자가 신 회장과 FI라는 이유에서다. 주주 간 문제에 회사가 나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전략이 바뀌었다. 잇단 고발 조치를 계기로 적극 대응에 나서는 모습이다.
신 회장과 특수관계인은 교보생명 지분 36.91%를 갖고 있다. 만약 ICC가 FI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고, 신 회장이 FI에 돌려줄 돈을 조달하지 못한다면 지배구조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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