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국내 증시를 쥐고 흔들던 설정액 1000억원 이상의 대형 주식형 공모펀드에서 자금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다. 투자자들이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하는 펀드매니저를 믿고 투자하기보다는 시장 수익률을 따라가는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거나 직접 투자에 나선 영향이다. 투자자들의 환매 요구가 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주식을 내다팔면서 주식형펀드의 수익률이 더 하락하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년 새 2조원 빠져나간 대형 펀드
7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으로 설정액 1000억원이 넘는 국내 액티브 주식형펀드 50개의 총설정액은 14조765억원에 불과했다. 1년 전에 비해 펀드 수는 2개밖에 줄지 않았지만 설정액은 2조626억원이나 감소했다.
대형 펀드일수록 유출 규모는 더욱 컸다. 2017년 4월 기준 4개에 달했던 설정액 1조원 이상의 액티브 주식형펀드는 한 개밖에 남지 않았다. 신영자산운용의 신영밸류고배당 펀드가 설정액 2조1165억원을 기록 중이다. 하지만 신영밸류고배당은 2014년 이후 국내 주식형펀드 설정액 1위를 지켜왔지만 2018년 박인희 매니저가 이직하면서 작년에만 3700억원이나 빠졌다.
업계에서는 저조한 공모펀드 수익률에 실망한 투자자들의 환매 신청으로 자금이 대거 유출돼 매니저들이 운용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수익률이 더 저조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환매 요청이 들어오면 매니저들은 투자자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주식을 팔아 현금을 마련한다. 이 과정에서 포트폴리오에 담은 종목 중 수익률이 높은 종목부터 파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대규모 매도 물량을 쏟아내면 주가는 떨어지고 펀드 수익률 역시 하락한다. 한 중소형주 펀드매니저는 “확신을 갖고 투자한 종목도 환매에 대응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매도해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000억원 이상 액티브 주식형펀드 50개의 올해 평균 수익률은 -17.63%다. 운용보수와 판매수수료 등을 고려하면 대형 펀드가 흔히 벤치마크로 채용하는 코스피지수(올 들어 -18.46%)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올 들어 1조원 팔아치운 운용사
이어지는 자금 유출에 액티브 주식형펀드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변동성 장세에서도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자산운용사와 펀드 등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주식 1조1433억원(유가증권시장 8190억원, 코스닥시장 3243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코스피지수가 저점(1439.43)을 찍은 지난 3월 19일 이후에도 자산운용사는 주식 818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개인투자자가 올 들어 주식시장에 25조3562억원을 쏟아부은 것과 대비된다.
국내 대형 주식형펀드의 상당수가 저평가 및 낙폭과대주에 집중 투자하는 가치투자펀드인 점을 감안하면 이런 소극적 투자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과거의 주식형펀드들이 자금력과 매니저의 기업 발굴 등을 바탕으로 저평가된 우량주를 발굴하고 시장을 주도했다면 지금의 펀드들은 환매 대응에 급급하면서 가격 결정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투자자들이 시장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모펀드가 부진할 때는 외국인들의 움직임에 따라 증시가 휘둘리는 흐름은 계속될 것이라고 김 센터장은 덧붙였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