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반포동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지난 25일 급하게 문을 닫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방문한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번이 벌써 네 번째다. 환자 방문 사실을 확인하면 곧바로 방역하고 하루 이틀 문을 닫는 것은 일상이 됐다. 전국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같은 곳이 많다. 백화점, 마트, 슈퍼 등 오프라인 유통 매장들의 사정은 다 비슷하다.
한국경제신문이 국내 주요 백화점 세 곳(롯데, 신세계, 현대)과 대형마트 세 곳(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을 대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휴업 일수를 집계해 봤다. 이들의 휴업 일수만 총 136일이었다. 매출 손실은 수천억원으로 추산된다. 장사가 안돼 감소한 매출은 가늠조차 어렵다. 한마디로 ‘비상 상황’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형마트와 슈퍼는 매달 두 차례 의무휴업 규제를 받는다. 매일 밤 12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도 못 한다. 정부와 정치권에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만 자유롭게 영업하게 해달라”고 여러 번 하소연해 봤지만 헛수고다. 총선을 코앞에 둔 정부·여당은 ‘표에 도움이 안 되는’ 의견에는 콧방귀도 안 뀌고 있다. 한 유통사 관계자는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코로나19 피해 산업을 지원한다고 한다”며 “왜 돈을 쓰나. 영업시간 규제만 풀어줘도 대규모 재정을 투입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면세점 업계도 불만이 많다. 손님이 끊겨 텅텅 빈 인천공항에 입점한 면세점들은 매월 수백억원의 임차료를 꼬박꼬박 내고 있다. “임대료를 잠시 낮춰달라”고 몇 차례 요구했지만 번번이 묵살됐다. 당정은 코로나19 대책이라며 중소기업에만 임대료를 낮춰주기로 했다.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사이 면세점들은 한계로 내몰리고 있다. 에스엠면세점은 25일까지 납부해야 하는 2월 임차료를 내지 못했다. 롯데, 신라 등 대기업 계열 면세점들은 최근 김포공항 면세점 영업을 중단했다.
유통업계는 교통유발부담금, 환경개선부담금 같은 준조세 부담을 완화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내 1위 유통사인 롯데쇼핑은 지난해 이런 명목으로 416억원을 냈다. 작년 법인세(약 270억원)보다 많은 금액이다. 준조세 부담을 낮춰 줄 명분도 있다. 교통유발부담금의 경우 백화점, 마트가 교통 혼잡을 유발한다는 것이 이유다. 현재 백화점, 마트를 찾는 손님은 크게 줄었다. 도로에 다니는 차도 많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중순 장관들에게 ‘전례 없는 대책’을 주문했다. 하지만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규제를 틀어쥔 당정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표심에만 신경 쓸 뿐이다. 영업시간 규제는 전통시장 상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2012년부터 시행됐으나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된 지금, 이런 규제가 전통시장 상인을 보호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소비자 불편만 초래할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임대료, 준조세 일시 감면 및 유예는 창의적 발상도 필요없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만 기울여도, 현장에 한 번만 나가 봐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위기 대책이다.
ahnjk@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