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최진호(36·현대제철·사진)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안정’이 보장된 한국으로 ‘유턴’할 것이냐, 매주 나라와 문화, 코스가 바뀌는 유러피언투어에서의 ‘유목민’ 생활을 이어갈 것이냐…. ‘최선을 다해 할 만큼 했다’는 주위의 위로도 그를 흔들었다. 자연스레 성공이 보장된 한국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한국프로골프(KPGA)코리안투어에서 거둔 우승 수만 7승이다. 2016년과 2017년, 2년 연속 대상을 받으며 부와 명예를 모두 손에 넣은 그였다.
그는 ‘재도전’을 선택했다. 최근 경기 성남 남서울제2연습장에서 만난 그는 “퀄리파잉(Q)스쿨 마감 이틀 전까지 등록하지 않고 고민했다”며 “복귀하면 다시 유럽으로 갈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1년 열심히 했는데 Q스쿨까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마감 직전 등록했다”고 회상했다.
부인에게 캐디백 맡겨…Q스쿨 ‘합격’떨어지면 미련 없이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아내와 약속했다. 그는 “그래서 마음을 놓고 갔다”고 했다. Q스쿨이 유럽 마지막 무대라고 여겨서 그랬을까. Q스쿨 ‘세컨드 스테이지’에선 캐디백을 아내에게 맡겼다. “하하호호 웃으며 편하게 쳤다”는 게 그의 말이다.
“아내에게 캐디보다는 ‘말동무’ 역할 정도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옆에서 ‘정신적’으로 끌어주더라고요. 동갑내기에 선수 출신, 연애만 7년 하고 만난 지 15년 넘은 와이프가 제겐 최고의 캐디였습니다. 자기가 골프가 안될 때 겪었던 경험을 말해주면서 상담해줬어요. 속 이야기를 다 털어놓고 나니 어느새 최종전까지 가 있더라고요. 하하.”
아내 덕에 얻은 기회였다. 허무하게 날릴 수 없었다. 최진호는 다시 전문 캐디와 6라운드 강행군으로 펼쳐진 퀄리파잉스쿨 파이널스테이지에 나섰다. 6일간 15언더파. 전체 10위였다. 최진호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며 “아내가 정말 좋아했다”고 말했다.
유러피언투어는 ‘외로움과의 싸움’다시 잡은 기회지만, 두려움도 있다. ‘외로움’이다. 최진호는 “4~5주 연속 커트탈락하고 떨어진 적이 있다”며 “부진이 길어지고 경쟁을 못할 때, 이런 시기를 혼자 이겨내야 할 때 정말 힘들다”고 털어놨다.
한국 동료들은 ‘늦깎이 신인’ 최진호에게 더없이 소중한 사람들이다. 왕정훈(25), 박효원(33) 등은 지난 2년의 ‘떠돌이 생활’을 도와준 버팀목이다. 올해는 이태희(36)와 문경준(38) 등이 합류하면서 동료가 더 늘었다. “한국 선수들끼리 이동하는 일요일 저녁부터 계속 붙어다니죠. 서로에게 없어선 안될 존재들이에요.”
‘장타’보다 ‘정확도’최진호의 2020시즌 목표는 ‘정확성 키우기’다. 그동안 ‘장타’에만 연연했던 그였다. 하지만 올해는 비거리에 쏟는 시간을 줄였다.
“한국에서 뛸 땐 어쩌다 해외 투어에 나가면 외국 선수들과 우리나라 선수들의 차이가 ‘비거리’에서 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유럽에서 2년을 뛰니 보이더라고요. ‘장타자’일수록 유리한 것이 사실이지만 결국 정확도, 쇼트게임에서 승부가 난다는 것을요. 유럽 대부분의 코스가 전장이 긴 곳이 많지 않다는 점도 ‘정확한 골프’가 중요한 이유죠.”
적응력도 그가 키워야 할 숙제다. “매주 기후가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유러피언투어 대회 특성상 매주 완전히 다른 잔디에서 공을 쳐야 하죠. 어렵겠지만 후배들도 가능한 한 여러 잔디를 경험하고 적응력을 키운다면 세계 무대에서 충분히 성공할 거라고 봅니다.”
최진호의 올해 목표는 ‘풀시드’를 다시 확보하는 것이다. 이후 상위 50위 안에 진입해 최종전 DP월드투어챔피언십에 나서는 것이 최종 목표다.
“제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세 아들인) 승언이, 승현이는 물론 이제 겨우 세 살인 막내 승하도 아빠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더라고요. 아들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기 위해서라도 도전을 멈춰선 안될 것 같아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투어가 중단됐지만, 휴식기로 생각하지 않고 계속 연습할 계획입니다. 좋은 성적을 내고 꼭 ‘금의환향’하겠습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