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김명숙 씨(60)는 젊은 시절 대구 근처 풍경에 매료됐다. 먼발치에서 관망하는 듯한 시선으로 팔공산의 안개 낀 풍경을 곧바로 화첩에 옮기면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계명대 미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대구 인근 풍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도 하고, 상상력을 가미해 실제 풍경을 비틀어 보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그는 꽃집에 갔다가 여기저기 놓여 있는 다양한 형태의 꽃묶음과 화분, 꽃다발, 꽃병을 보면서 내밀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겼다. 당장 작업실로 돌아와 화필을 곧추세워 꽃은 물론 꽃집의 실내 정경을 화폭에 옮기면서 자연의 내면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꽃 정물의 개념에서 벗어나 화면을 다양하게 변주했다.
지난 30여 년간 꽃의 ‘쌩얼’에 심취된 김씨의 개인전이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갤러리에서 열린다. 화려하기보다 중간적 색감을 활용해 명상적 화면을 창조한 그가 서양 재료를 다양하게 수용하며 꽃 그림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리다.
4년 만에 여는 이번 전시회 주제는 ‘중간색 그 세련됨의 향연’. 전국을 여행하며 채집한 꽃과 꽃집을 가득 메운 실내 풍경을 마치 조선시대 민화풍으로 재구성한 근작 30여 점을 건다.
김씨는 꽃을 통해 미니멀리즘(minimalism) 개념을 화면에 풀어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꽃에 대한 경외와 예찬을 강조하던 시기를 지나 자연의 본질에 한층 충실해지고 싶어서다. 작가는 “삶과 죽음, 유와 무 등 상반된 개념 자체를 자연의 본성으로 받아들이고, 단순한 요소로 최대 효과를 이루려는 미니멀적인 사고방식으로 그 의미를 꽃에 녹여냈다”고 말했다.
김씨는 꽃의 형태 해석보다 세부 묘사를 생략하거나 단순화한다. 또한 배경을 평면적인 이미지로 압축하고, 색채 역시 시선을 자극하는 원색의 순도와 채도를 낮춰 중간 색조로 아울렀다. 형태 묘사를 중심으로 하는 재현성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 미니멀리즘의 조형미에 방점을 둔 것이다.
실제로 꽃집의 실내 풍경을 잡아낸 대작들은 꽃이 놓인 선반과 탁자, 의자 등을 함께 배치해 조형 공간으로 이동시키면 새로운 미적 감동을 준다. 다시점 방식의 공간 묘사와 역원근법을 적용해 민화의 책가도처럼 단순하게 압축했다. 배경도 평면적인 이미지로 통일해 다소 복잡한 꽃집 정경을 간결한 이미지로 바꿔 평면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3차원을 2차원 화폭에 옮기려는 그의 집요한 노력의 결과다.
평면성을 강조한 꽃 그림 역시 꽃잎이 바람처럼 일렁이며 기운 생동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생명의 환희가 넘치고, 중간 색조의 싱그러움으로 절로 숨통이 터진다. 미니멀리즘을 표상하는 꽃들은 활짝 웃는 표정에 더욱 집중하게 한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꽃잎 하나하나 그 자체가 생명력으로 가득한 하나의 우주처럼 보인다. 김씨는 “꽃은 그 자체로 유혹”이라며 “형형색색의 꽃을 그리며 생명의 신비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관람객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