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을 강요하거나 압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한 채용절차법(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된 지 6개월가량 지났지만 여전히 사업현장에서는 노조원을 고용하라는 압력이 계속되고 있다. 노조원들의 압박으로 건설업체들이 신고를 꺼리면서 ‘채용 강요’로 과태료를 부과받은 사례는 개정안 시행 후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고하더라도 실제 과태료 부과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 보니 건설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채용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채용 강요’ 과태료 부과 ‘0건’
2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채용절차법이 개정된 이후 건설노조의 ‘채용 강요’ 관련 신고 건수는 11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과태료 부과가 이뤄진 사례는 한 건도 없다. 경찰에 수사 의뢰가 요청된 사례도 단 한 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날 기준으로 올 들어 서울에서 신고된 ‘자노조원 고용 촉구’ 집회는 84건에 이른다. 이날도 건설노조 두 곳이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한 공사현장과 중구 을지로동 대우건설 본사 앞에서 노조원의 고용 촉구 명목으로 집회 신고를 했다.
지난해 7월 개정된 채용절차법에 따르면 누구든 법령을 위반해 채용에 관한 부당한 청탁, 압력, 강요 등의 행위를 할 경우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노조원 채용 압박을 받는 건설업체들은 신고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신고로 강경 대응했다가는 다른 공사현장에서 건설노조의 집단 행동으로 공사 지연이 우려돼서다. 서울 강남구의 공사현장에 투입된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한 곳에서 신고하는 순간 다른 사업장에서 노조의 반발이 일어난다”며 “10일만 쉬어도 공사기간 지연으로 1억원 단위의 손해를 보는 사업 특성상 채용 요구를 들어주고, 공사를 속행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설명했다.
“공기 지연해도 과태료 부과 없어”
피해를 본 업체가 채용 압력 등으로 노조를 신고해도 처벌되기는 어렵다. 채용절차법은 상시 근로자가 30명 이상인 사업장 대상으로 적용된다. 건설현장의 채용 계약은 각 건설 공정별 하청을 맡은 업체와 근로자 사이에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골조공사 등 인력이 많이 투입되는 공정이 아니라면 근로자 30명 이상을 한 사업장에서 고용하는 건설업체는 드물다. 10명 이내 소규모로 인력을 쓰는 타워크레인 업무 등은 사실상 채용절차법 적용에서 벗어나 있는 셈이다.
근로자 수를 충족한 사업장이라고 하더라도 과태료를 부과하기는 쉽지 않다. 법 조항에 따르면 채용 강요와 압력을 행사하고자 ‘법령을 위반한’ 행위가 드러나야 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집회 관련 일정을 경찰로부터 받고 있는 게 아니다 보니 현장 단속에 대한 애로사항이 있다”며 “경찰이 수사해 입건 등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해명했다.
건설업체들은 채용절차법 개정안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한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과태료 3000만원 미만까지 부과하겠다고 하지만 1차 위반 시 1500만원이 한도”라며 “벌금형이 아닌 과태료라는 걸 고려하면 처벌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서울 강남구에서 노조 간 집회 충돌로 공사에 차질을 빚은 건설현장이 있었지만 여기서도 노조 측이 떠안은 과태료는 없었다”며 “본격적으로 골조 공사에 접어드는 봄이 되면 노조의 채용 요구가 더 거세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 채용절차법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사용자가 근로자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조리를 해소해 채용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4년 도입됐다. 채용 비리 연루자를 제재하고 채용 과정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법적 근거다. 상시 근로자 30명 이상의 사업장에서만 적용된다. 지난해 4월 ‘채용 강요 등의 금지’, ‘출신지역 등 개인정보 요구 금지’에 관한 조항이 신설됐다. 이 개정안은 지난해 7월 17일 시행됐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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