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고급승용차(럭셔리카) 시장인 미국은 자동차 메이커들의 격전장이다. 미국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아야만 비로소 글로벌시장을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매체 클린테크니카에 따르면 지난해(1~11월) 미국에서 1000대 이상 팔린 럭셔리카 모델만도 29종(12개 브랜드), 판매대수는 60만 대를 웃돈다.
부가가치가 높은 미국 고급차시장은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 독일 3총사와 일본 도요타의 렉서스가 ‘빅4’를 형성해 왔다. 그 뒤를 인피니티(닛산), 아큐라(혼다), 뷰익·캐딜락(이상 GM), 링컨(포드), 볼보 등이 좇는 형국이다. 후발주자의 진입이 어려운 시장인데, 테슬라가 전기차 모델3로 지난해 판매 1위(12만7836대)에 올랐다. 철옹성 같던 판도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그런 가운데 경제주간지 포천이 최근 렉서스의 위기와 함께 현대자동차 제네시스의 부상을 언급해 눈길을 끈다. 렉서스의 미국 고급차시장 점유율은 10년 전 18.2%(1위)에서 지난해 13.0%(4위)로 떨어졌다. 포천은 그 이유로 렉서스가 럭셔리SUV 시장의 선구자지만 10년 넘게 신모델이 없어 라인업이 노후화한 점을 들었다. 또한 렉서스의 강점인 편안한 승차감, 합리적 가격 등을 제네시스가 재현하며 바통을 이어받고 있다는 긍정 평가도 내놨다.
렉서스의 아성에 제네시스가 도전하는 모양새지만 아직은 요원한 게 현실이다. 제네시스의 수출모델 G80은 지난해 미국에서 6308대(23위)가 팔리는 데 그쳤다. 판매량 2위인 렉서스의 ES시리즈(4만6311대) 등 다양한 모델과는 비교대상이 못 된다. 그래도 미국에서 출시 4년짜리 제네시스를 30년 된 렉서스의 ‘경쟁자’로 언급한 것만도 괄목할 만하다. 제네시스는 올해 3종의 신차를 선보인다니 주목도가 더 높아질 전망이다.
렉서스는 토머스 프리드먼의 베스트셀러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도 인용됐듯이, 산업화·세계화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자동차의 콘셉트 자체가 자율차, 전기차, 수소차 등으로 완전히 바뀌는 4차 산업혁명 시대다. 누가 미래의 상징이 될지 미지수다.
미국에서 중저가 이미지가 강했던 현대차가 제네시스로 막 관심을 끄는 단계지만, 그 이름(창세기)처럼 새로운 세계를 만들지 말란 법도 없다. 새해를 맞아서도 우울한 뉴스뿐인데, 우리 기업들의 분투에는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주자.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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