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와 민족을 이해하려면 각각에 속한 철학을 이해해야 한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의 《서양철학사》는 시대적 분위기와 맥락 속에서 서구사상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짚어주는 저작이다. 러셀은 지금도 이해하는 사람이 100명 미만이라는 《수학 원리》를 20대에 썼을 만큼 다방면에서 천재적이었던 ‘20세기 대표 지성’이다. 대가의 눈높이에서 거의 모든 철학자에 비판적으로 접근한 것이 이 책의 차별점이다. 니체의 말을 빌려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사기꾼”이라고 직격탄을 날렸을 정도다.
간과하기 쉬운 사실들에 대한 환기도 신선하다. 부도덕한 궤변론자로 인식되는 소피스트를 “아테네 민주주의를 강하고 풍부하게 만든 회의주의자”로 긍정 평가했다. 반면 르네상스는 “소수 학자와 예술가들의 운동이었던 탓에 크게 성공할 수 없었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놨다.
1945년 출간된 《서양철학사》에는 정치인 작가 과학자가 다수 등장하고, 종교개혁 프랑스혁명 같은 역사적 사건도 자주 언급된다. 러셀은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다”는 말로 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후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고대 철학자로 플라톤을 꼽았다. “선(善)을 최대로 이해한 사람이 통치자가 되는 국가”를 이상적 모델로 제시한 플라톤에 적극 동조했다. “선이 무엇인지 알기 위한 지성의 훈련과 도덕적 훈련을 받지 않은 자들의 정치참여를 막지 못하면 국가는 반드시 부패한다.”
지성·도덕 없는 정치는 국가 부패시켜
고대 철학 다음 시기는 가톨릭 철학으로 명명했다. 교부 철학과 스콜라 철학으로 나뉘는 이 시대 철학의 목적은 ‘신앙의 옹호’였다. 초기 기독교 교리를 체계화한 학자를 일컫는 ‘교부’들은 신앙을 이성보다 절대우위에 놓고 플라톤 철학과 기독교를 접목했다. 하지만 이성이 성장하면서 신앙이 의심받게 되자 둘 간의 융합을 꾀하는 스콜라 철학이 등장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내 목적은 신앙이 공언하는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 시기 철학은 신학의 시녀였다.
르네상스와 더불어 교회 권위가 약화되면서 개인주의가 출현하고 무정부주의까지 생겨났다. 15세기 이탈리아의 무정부 상태는 소름끼칠 정도였으며, 이를 배경으로 마키아벨리 학설이 출현했다. 러셀은 “핵심은 권력의 장악”이라고 한 마키아벨리의 정치철학에 크게 공감했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면 어떤 종류이든 권력이 필요하다. 권력은 흔히 여론에 좌우되고, 여론은 선전·선동에 좌우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당시 ‘절대권위’였던 플라톤에 반대해 “이성은 타고난 능력이 아니며 근면과 경험에 의해 발전한다”고 봤던 홉스에도 큰 애정을 보였다. “홉스는 근대 정치론을 세웠고, 미신적 요소에서 완전히 벗어나 만인은 평등하다고 주장했다.”
《서양철학사》는 근대철학의 문을 연 사람으로 데카르트를 지목한다. “플라톤 이후의 철학자들은 모두 우수한 교사들이었을 뿐이지만, 데카르트는 진리를 전달하려는 열망을 품은 발견자이자 지적 탐험가였다.”
개인 구속 않는 게 자유주의 핵심
이 책은 가차없는 비판으로 여타 철학서와 구별된다. 러셀은 “인간은 본성적으로 선하며 제도로 인해 악해질 뿐” “사회적 불평등의 기원은 사유재산제”라고 주장한 루소 철학을 “독재정치에 대한 옹호”라며 평가절하했다. 루소 철학이 정치현장에서 거둔 첫 결실이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였으며, 히틀러도 루소의 후예라고 썼다. 헤겔에 대해서도 “가장 이해하기 힘든 철학”이라며 부정적이었다. 니체 사상에는 “과대망상 환자의 말이라고 단순히 치부해도 좋을 부분이 많다”며 가장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로크 철학도 “일관되지 않은 이론”이라고 지적했다. 로크는 절대권위와 맹목적 복종을 배격하고 광적인 개인주의도 거부했는데, 이런 철저한 저항이 ‘국가 숭배’ 학설을 탄생시켰다고 봤다. 하지만 “현대적 형태의 자유주의는 로크와 함께 시작됐다”는 호평도 동시에 내놨다. “사람들이 민주국가를 결성하고 정부 지배 아래 들어가기를 자청한 최고 목적은 재산 보호”라고 한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루스벨트와 처칠을 로크의 후예로 꼽았다.
러셀의 철학사 강의는 자유주의에 대한 강조로 마무리된다. 그는 자유주의의 핵심을 “비합리적인 교의에 기반하지 않으면서 질서를 보장하고, 사회 보존에 필요한 이상으로 개인을 구속하지 않고서 안정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정리했다. “자유주의의 시도가 성공할지는 오직 장래에 일어날 일이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즈음 한국에서 일어나는 여러 비합리적인 사건과 집단사고의 확산은 러셀이 말한 자유주의의 핵심과 너무 멀지 않은지 돌아보게 한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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