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주변의 집회를 금지하는 법이 사라졌다. 헌법재판소가 이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며 지난해 말까지 법을 개정할 것을 촉구했으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등으로 여야가 국회에서 대치하는 과정에서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회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는 대규모 집회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어지면서 경찰도 대비에 나섰다.
지난해 5월 헌법재판소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1조 1항인 ‘국회의사당 경계 100m 이내 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소규모 집회와 공휴일 집회 등 국회 기능을 훼손할 가능성이 낮은 집회의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헌재는 지난달 31일까지 이 조항에 대한 개선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달 1일부터 효력을 상실한다고 판결했다.
헌재의 결정 이후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국회 활동을 방해하지 않거나 대규모 집회로 이어지지 않는 집회를 허용하는 내용 등 집시법 개정안을 다수 발의했다. 그러나 2일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 안들은 아직 국회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국회 기능을 마비시킬 가능성이 있는 대규모 집회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어진 셈이다.
우려의 목소리가 큰 이유는 국회 앞 대규모 집회가 폭력 사태로 이어진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6일 국회 본관 앞에서 보수단체 및 보수정당 지지자 수천 명이 대규모 집회를 열고 본관 진입을 시도했다. 이날 국회 본관 입구가 폐쇄됐고 본회의는 열리지 못했다. 설훈 민주당 의원 등은 집회 참가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등을 고발했다. 경찰은 영등포경찰서에 전담팀을 꾸려 불법행위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작년 4월에는 국회 주변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국회 담장을 무너뜨리고 경내에 침입해 재판에 넘겨졌다.
경찰 관계자는 “11조 1항과 관계없이 국회의 안전과 기능을 보호할 책무가 있는 만큼 국회 인근 집회 규모에 따라 질서 유지선을 더 명확히 설치하고 상황에 맞는 규모의 경찰 병력을 배치해 집회가 충돌 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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