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바이오네틱스는 지난 23일 100억원의 추가 투자를 받았다. 설립된 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업체지만 ‘100억원 허들’을 가볍게 넘어섰다. 업계에서는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이 나온다. 한 벤처캐피털(VC) 관계자는 “바이오네틱스는 블루오션인 녹내장과 난치성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스타트업”이라며 “유의미한 차별화 포인트가 있는 업체라면 100억원을 투자받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100여 곳, 100억원 이상 투자유치26일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올 한 해 1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은 100여 곳에 달한다.
투자유치액 상위권에는 우아한형제들(지분 87% 인수가 4조1000억원)을 비롯해 화장품 브랜드 ‘닥터자르트’를 판매하는 해브앤비(1조3000억원), 야놀자(2140억원) 등 설립된 지 8~15년 된 스타트업이 자리잡고 있다. 전부 다른 기업에 인수된 사례다.
첫 투자 단계인 ‘시리즈A’ 단계에서 거액을 유치한 곳도 적지 않다. 15곳의 스타트업이 올해 시리즈A 단계에서 100억원 이상을 투자받았다. 벤처투자 시장이 뜨거워지면서 될성부른 기업에 일찌감치 거액을 밀어넣는 VC가 늘었다는 설명이다.
LG CNS의 클라우드 사업 파트너로 선정된 메가존클라우드는 지난 3월 480억원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현대자동차와 협업 관계를 구축한 자율주행 기술 스타트업 코드42도 10월 300억원을 투자받았다. 코드42는 3월 설립된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업체다.
이외에도 △알츠하이머 치료제 연구개발(R&D) 스타트업 아밀로이드솔루션(145억원) △항공·우주 스타트업 페리지항공우주(140억원) △게임개발 스타트업 로얄크로우(134억원) △교육기술 스타트업 클래스101(120억원) △미디어커머스 스타트업 어댑트(120억원) 등이 성공적으로 첫 라운드 투자유치를 마쳤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2년 전만 해도 시리즈A 단계에서 50억원을 받으면 ‘대박’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최근엔 100억원 이상으로 ‘슈퍼 루키’ 기준선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CEO 이름 믿고 거액 투자스타트업 창립자의 이름만 믿고 100억원 이상의 거액을 내놓는 사례도 늘고 있다. 코드42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가 300억원을 거머쥘 수 있었던 배경은 송창현 대표의 개인 브랜드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송 대표는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와 퍼듀대에서 전산학을 공부했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을 두루 거치며 전문성을 키웠다. 그는 2008년 네이버로 자리를 옮긴 뒤 네이버 최고기술책임자(CTO)와 네이버의 R&D 자회사인 네이버랩스 최고경영자(CEO) 등을 지냈다. 네이버의 미래 기술 연구를 진두지휘했다는 얘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송 대표는 개발자들에게 ‘대부’ 소리를 듣는 인물”이라며 “기술은 물론 네트워크 면에서도 다른 창업자와는 수준이 다르다”고 귀띔했다.
CEO의 유명세와 상관없이 돈이 몰리는 스타트업도 있다. 시장의 유행을 잘 반영한 획기적인 아이템을 내놓은 경우다. 지난 9월 시리즈A 단계에서 100억원을 투자받은 크라우드웍스는 국내에서 생소한 ‘인공지능(AI) 데이터 마켓플레이스’를 구축한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기존 명품 온라인 플랫폼과 차별화한 재고관리 시스템으로 빠르게 이용자를 확보한 ‘발란’도 최근 첫 라운드에서 100억원을 유치했다. 두 회사는 설립된 지 각각 2년과 4년 된 스타트업이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대박 사례’가 끊이지 않는 것은 스타트업 전문 VC와 액셀러레이터가 늘고 있어서다. 특히 액셀러레이터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면 돈이 된다”는 소문에 힘입어 최근 2년 사이 다섯 배 이상 늘었다. 대기업은 물론 중견·중소기업도 액셀러레이터 대열에 합류한 결과다. ‘전주(錢主)’의 숫자가 많아진 데다 정부 예산까지 늘면서 스타트업의 주머니가 풍족해졌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윗목’의 온도는 여전히 차갑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VC 관계자는 “전반적인 투자금액이 대폭 늘어난 것은 맞지만 결국 돈이 쏠리는 건 일부 스타 스타트업뿐”이라며 “대다수 스타트업은 1년 내내 VC에 읍소해도 원하는 투자를 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