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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지뢰밭…공무원은 방치…'불법' 낙인에 쓰러지는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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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영역에 도전할 엄두가 나질 않네요. 정부나 정치권이 언제 ‘불법 딱지’를 붙일지 모르잖아요.”

국회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에 합의한 이후 주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내놓은 반응은 한결같다. 이해관계자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는 등 돌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스타트업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토로였다. 법령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합법’과 ‘불법’이 나뉘는 회색지대를 공무원들이 의도적으로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타다 금지법’ 후폭풍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은 ‘타다 금지법’으로 불린다. 정원이 11~15인승인 승합차를 빌려 사업하는 경우 운전자까지 알선할 수 있다는 시행령의 예외 조항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VCNC의 타다 서비스는 불법이 된다.

VCNC는 사업 모델을 만드는 과정에서 위법성 여부를 면밀히 따졌다. 서울시와 국토교통부에 사업을 해도 되는지 질의했고, 로펌 두 곳에서 법리 검토도 받았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택시업계가 본격적으로 반발하면서다. 정치권은 논란이 되자 타다 서비스의 근거가 되는 시행령을 서둘러 고치기 시작했다.

검찰은 지난 10월 28일 타다 서비스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며 이재웅 쏘카(VCNC의 모회사) 대표와 박재욱 VCNC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처음엔 ‘문제가 없어 보인다’는 반응을 보이던 공무원들이 나중에 말을 바꾸는 일이 잦다”며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스타트업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셈”이라고 하소연했다.

곳곳이 규제 지뢰밭

어이없는 규제 탓에 곤경에 처한 스타트업도 수두룩하다. ‘찾아가는 동물 장례 서비스’로 유명한 펫콤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소각로와 방진 시설을 갖춘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만 동물 장례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펫콤은 지난 5월 일시적으로 규제를 유예해주는 규제 샌드박스에 도전했지만 담당 부서의 반응은 싸늘했다. 주민 동의를 받아오라는 주문이 걸림돌이었다. 김한종 펫콤 대표는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하라고 하고, 지자체는 중앙정부의 지침을 핑계로 내세운다”고 말했다.

모빌리티(이동수단) 스타트업인 딜리버리T도 ‘규제 샌드박스 미아’로 꼽힌다. 손님이 많지 않은 시간대에 택시로 화물을 실어나를 수 있도록 소비자와 기사를 연결하는 앱(응용프로그램)을 주력 사업 아이템으로 내세웠다. 지난 10월까지 기사 1000여 명이 모였을 만큼 시장의 관심이 뜨거웠다.

문제는 관련 법령이었다. 택시를 활용한 택배영업과 관련한 규정이 현행법에 존재하지 않았다. 딜리버리T는 고민 끝에 지난 4월 규제 샌드박스에 도전했다. 도전은 오히려 ‘독(毒)’이 됐다. 국토교통부의 반대로 안건 상정 자체가 안 됐다. 화물연대와 퀵서비스협회 등이 반대한다는 게 국토부가 내세운 이유였다.

공유 전동킥보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은 요즘 국회만 쳐다본다. 전동킥보드가 인도와 자전거 도로로 다닐 수 있도록 허용한 도로교통법이 국회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현행법은 전동킥보드를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하기 때문에 차도로만 다닐 수 있다. 전동킥보드 사고가 잦은 배경 중 하나가 잘못된 법 때문이란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데이터가 없어요”

업종과 무관한 걸림돌도 있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비즈니스가 힘들다는 목소리가 가장 많이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세부 산업 분야 19개 가운데 63%에 해당하는 12개 분야가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전자통신망법)에 막혀 있다.

한국에선 데이터를 모으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개인 신분을 드러낼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데이터는 수집과 가공이 불가능하다. 개인정보보호법 등 데이터 관련 법들은 주민등록번호처럼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데이터뿐만 아니라 다른 정보와 결합해 개인의 신분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는 데이터도 개인정보로 간주하고 있다. 정부가 가명정보를 제한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데이터 3법’ 개정안을 준비했지만 언제 국회에서 통과될지 미지수다.

송형석/김남영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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