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양국이 1단계 무역합의를 이뤄냈습니다.
“지난 13일 발표된 1단계 무역합의는 양국 관세전쟁에서 중대한 휴전이라고 봅니다. 글로벌 성장을 방해해온 불확실성을 낮춘다는 점에서 세계 경제뿐만 아니라 양국 모두에 희소식입니다. 그러나 미·중 갈등의 골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습니다. 관세만이 전부가 아니지요. 기술 리더십, 기술 강제 이전, 사이버 보안, 국가 주도 산업정책 등 핵심 이슈는 1단계 협정에서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내년에도 미국에서 대선이 있기 때문에 이런 어려운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중국은 지식재산권 보호 등 여러 가지를 양보한 듯한데요.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을 더 구매하고 환율을 조작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환율 조작은 사실 지금 이슈도 아니지만, 미국이 뭔가 성취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사항이지요. 또 중국은 이미 새로운 외국인투자법을 제정했고, 강화된 지식재산권 보호 조치도 발표했습니다. 이런 내용이 이번 합의에 포함된 겁니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듯이 중국이 전체적 접근법을 크게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중국과의 이번 합의가 미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중국과의 딜은 미국이 대중(對中) 무역적자를 줄이려는 데서 비롯됐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전반적인 무역적자를 줄이지 못할 겁니다. 미국은 지난해 102개국과의 상품 무역에서 적자를 봤습니다. 그건 적자가 중국 때문이 아니라 낮은 저축률 등 국내 문제라는 걸 뜻합니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기만 하고 내부 저축을 늘리는 데 등한시한다면 중국의 몫은 다른 나라로 옮겨갈 뿐입니다. 사실 그건 미국엔 더 나쁩니다. 다른 나라는 중국에 비해 더 높은 비용으로 생산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1단계 무역합의는 의미가 없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중장기적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미·중 갈등은 결국 기술 패권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는 오랫동안 계속될 겁니다. 미국이 중국을 두려워하는 건 중국이 자체 기술 혁신을 본격화하면서 기술 패권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매우 적은 증거에 기반해 중국이 기술 절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화웨이가 통신장비 백도어에 스파이칩을 넣었다며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물적 증거는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이 중국 격리 전략에 전념하고 있다고 점점 더 확신하고 있습니다.”
▷내년 미국 대선 이후 무역갈등이 다시 고조될까요.
“미국 내부에서 생길 일을 생각하면 그럴 수 있습니다. 1단계 무역합의에 관계없이 미국의 무역적자는 이어질 것입니다. 현재 저축률(조정)이 국민소득의 약 2.5%인데, 이는 20세기 마지막 30년간 평균 6%에 크게 못 미치지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무역적자를 해결하겠다며 유럽을 겨냥할 겁니다. 프랑스 명품에 관세를 매길 것이고 브라질, 멕시코, 캐나다, 일본 등 어디든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건 무역적자 딜레마를 단기에 해결하려는 잘못된 접근법이지요.”
▷중국 경제가 어렵습니다. 위기가 터질 가능성이 있을까요.
“중국 경제 둔화의 핵심 원인은 무역전쟁이 아니라 부채 감축을 위한 중국 정부의 노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제결제은행(BIS) 데이터를 보면 중국의 레버리지가 조금씩 낮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너무 높아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유 대기업 중심으로 빚이 급증했지요. 중국 정부는 3년 전부터 이런 상황을 개선하겠다는 뜻을 보였고, 진전이 있긴 하지만 더 많은 개선이 필요합니다. 중국이 부채 위기로 향하고 있다고 보진 않습니다. 정부가 이미 부채 감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무역갈등이나 부채 감축 때문에 경제가 경착륙하지도 않을 겁니다.”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까.
“2021년은 모르겠지만 내년에 미국 경제가 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없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이렇게 낮게 유지된다면 통화정책은 여전히 완화적일 것입니다. 이는 미국 경제가 무역협상과 관계없이 계속 확장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언제든 위기 가능성은 있지요. 지금처럼 시장에 ‘컴플레이선시(complacency·안주하는 현상)’가 만연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특히 사모 시장이 더 그렇습니다. 사모로 자본을 쉽게 모을 수 있고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요. 근원은 결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역정책과 과다한 기업 부채, 과대 평가된 주식과 벤처 투자가 위기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Fed가 올해 금리를 세 차례 인하했으며 다시 자산을 늘리고 있습니다.
“조금 걱정스럽습니다. 중앙은행이 저금리를 유지하고 자산을 확대하고 있는데, 이건 인플레가 소멸됐고 통화정책을 통한 부양책이 효과적으로 관리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 겁니다. 만약 이게 거품을 불러일으킨다면 금융위기 이후 Fed가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가 될 수 있어요. 금융위기 이전에 Fed가 저지른 실수는 지금 Fed가 하는 일과 비슷했습니다. 저는 인플레 문제가 심각했던 1970년대 Fed에서 일했습니다. 지금 인플레는 매우 낮습니다. 효율적인 글로벌 공급망으로 인해 물건값이 싸진 게 주요 원인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게 무역전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인플레 부활에 놀랄 수도 있습니다.”
▷한국 경제를 어떻게 보나요.
“한국 경제는 중국 경제 둔화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전망은 괜찮지만 아주 좋지는 않다고 봅니다. R&D에 집중해서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지금까지 전략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내년엔 세계 무역에서 하강 위험이 낮아졌다는 점에서 조심스럽게 낙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빠른 인구 감소와 고령화를 겪으며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고령화와 노동력 감소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 독일, 중국에 이르기까지 많은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해답은 어디에서나 같습니다. 여성의 경제 참여나 이민을 통해 노동인구를 늘리고, 규제를 완화해 근로자가 더 오래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가장 중요한 건 R&D 투자로 생산성을 높여 기존 인력을 통해 최대한 많이 생산하는 것입니다.”
▷노동시간을 규제하고 최저임금을 올리는 한국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정책을 어떻게 봅니까.
“임금 상승이 생산성 증가와 함께 가지 않으면 이는 경제에 비효율성을 초래해 궁극적으로 매우 비싼 비용을 치를 겁니다. 임금 상승은 생산성 향상을 통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잘못된 겁니다. 그런 종류의 정책은 공허합니다.”
■ 스티븐 로치는…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미국의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월가 출신 경제학자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와 함께 비관론자로 손꼽힌다.
1972~1979년 미 중앙은행(Fed)에서 일한 뒤 모건스탠리로 옮겼다. 1991년부터 수석이코노미스트로 근무했으며, 2005년 부동산시장 과열을 경고해 주목받았다. 2007년 4월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홍콩에서 근무했다.
2012년 월가를 떠나 예일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14년 책 《언밸런스드: 미국과 중국의 공생관계》를 펴내는 등 중국 문제에 정통하다.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뉴욕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5년 출생
△뉴욕대 경제학 박사
△Fed 연구원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
△모건스탠리 수석이코노미스트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
△예일대 경영대학원 선임교수
△예일대 잭슨글로벌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뉴헤이븐=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