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경기 부진이 물가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저성장·저물가 상황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물가 하락의 주된 요인을 농산물 가격, 유가 하락 탓으로 돌리던 2~3개월 전과 비교하면 인식이 다소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기 위해 한은이 조만간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에도 힘이 실린다.
한은은 12일 발간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통신보고서)에서 “올해 경기 요인이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물가상승률)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신보고서는 통화신용정책의 수행 상황과 거시 금융안정 상황 내용을 담은 것으로 한은은 매년 2회 이상 이를 국회에 제출한다.
이번 보고서에서 한은은 성장률이 낮아지고 경기가 부진해지자 가계가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하지 않으면서 그만큼 시중 물가가 낮아졌다고 평가했다. 올 11월 근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0.5% 올라 1999년 12월(0.1%) 후 가장 낮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시장에선 이번 보고서를 놓고 저물가에 대한 한은의 인식이 이전보다 엄중해졌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지난 8월 소비자물가가 사상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하자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9, 10월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간담회에서 “물가 수요(소비·투자) 압력이 약화됐다”면서도 “낮은 물가는 공급 측 요인 등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보고서에는 나빠진 실물경기가 물가를 끌어내렸다는 점에 무게를 실은 데다 실증 분석을 근거로 제시했다. 내년 물가 흐름 역시 약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한은은 “내년 근원물가 상승률은 올해에 이어 낮은 오름세를 보일 것”이라며 “2021년 경기가 개선되면서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한은이 실물 경제를 보는 시각도 종전보다 어두워졌다. 지난 8월 발간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는 국내 경제가 ‘미약한 성장 흐름’을 보인다고 분석했지만 이날 보고서에서는 ‘국내 경제 성장세 둔화’로 표현했다.
한은이 저물가·저성장 우려를 내놓은 점을 고려해 추가 금리 인하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장 전문가들은 한은이 내년 상반기에 기준금리를 한 차례 추가 인하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조동철 한은 금통위원도 지난달 참석한 한 정책심포지엄에서 “뒤늦게 기준금리를 낮춰봐야 물가가 반응하지도 않고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는 이날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결정에 대해 “대체로 시장 예상과 부합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정책금리가 인상되기 전에 지속적이고 의미 있는 인플레이션 상승이 있어야 한다는 제롬 파월 미 Fed 의장 발언에 대해 시장은 ‘비둘기’(통화완화 선호) 성향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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