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권고’라는 말을 좋아한다. 지난달 28일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서울 주요 16개 대학의 정시 대학수학능력시험 비중을 2023학년도까지 40% 이상으로 늘리는 ‘정시 40% 룰’을 발표하면서도 ‘강제’나 ‘의무’가 아니라 ‘권고’임을 강조했다. “사실상 강제가 아니냐”는 질문에는 항상 민감하다.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하는 교육부가 어떻게 강제로 정책을 집행할 수 있겠느냐”는 게 교육부 공무원들의 단골 멘트다.
하지만 교육부의 권고 사항을 단순히 권유로 받아들이는 대학은 없다. 교육부가 어떤 수단을 동원해 대학들을 꼼짝 못 하게 만들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시 40% 룰’ 시행에 동원된 수단은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이다. 교육부는 2023학년도까지 정시 모집 비율을 4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서를 제출하는 대학에만 이 사업의 참여 기회를 주기로 했다. 한마디로 교육부 말을 따르지 않으면 돈줄을 끊겠다는 얘기다.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의 연원을 살펴보면 교육부의 이런 태도는 더욱 ‘코미디’처럼 느껴진다. 이 사업의 전신은 입학사정관제(현 학생부종합전형) 확산과 정착을 위해 2007년 도입된 ‘입학사정관제 지원사업’이다. 다시 말해 10여 년 전 학생부종합전형 확산을 위해 도입한 재정지원 사업을 이제는 학생부종합전형 비중을 줄이고 수능 위주 전형 비중을 늘리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의문을 품은 기자들이 “대학들에 수능 비중을 늘리도록 하는 것이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의 본래 취지에 맞느냐” “수능 위주 전형을 늘리는 것이 고교교육에 어떤 기여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교육부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 “내년 초 사업 이름을 바꾸고 내용도 손볼 계획이다.” 사업의 목적은 허울뿐이고, 대학을 입맛대로 움직이기 위해 예산을 이리저리 돌려쓰는 것이 교육부 재정지원 사업의 실체라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올해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은 559억원 규모다. 지원 대상 학교는 68개교에 달한다. 대학 한 곳당 평균 8억원가량이 돌아가는 셈이다. 학생 선발권을 지키기 위해 지원금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대학이 나올 법도 하지만 그럴 조짐조차 없다. 11년째 이어지는 ‘반값 등록금’ 정책으로 재정 상황이 한계에 봉착한 대학들로서는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부에 반기를 들었다가 찍혀서 좋을 게 없다는 이유도 있다.
“차라리 모든 재정지원 사업 이름을 ‘교육부 말 잘 듣는 대학 지원사업’으로 바꾸면 얄밉지나 않겠다.” 정시 비중 확대 권고대상 대학 중 한 곳의 기획처장은 이렇게 말했다.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