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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 (31)] 터키? 칠면조를 이야기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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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에서 근무하던 때 이야기다. 인권 관련 회의가 끝난 후 쉬는 시간에 영국 외교관과 토론을 하게 됐다. 토론이 격해지자 그가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Let’s talk turkey.” ‘터키(국가명)? 칠면조? 도대체 뭘 이야기하자는 거야?’ 정확한 뜻을 안 것은 그의 설명을 듣고 나서다.

‘솔직하게 터놓고 말하자’는 뜻이었다. 옛날 백인과 아메리카 인디언이 사냥을 가서 칠면조와 대머리수리(buzzard)를 한 마리씩 잡았다. 이때 백인이 인디언에게 말했다. “당신이 대머리수리를 가져, 나는 칠면조를 가질게. 당신이 원한다면 나는 칠면조를 가질 수 있고 당신은 대머리수리를 가질 수 있어.” 인디언이 대꾸했다. “당신은 전혀 칠면조를 이야기하지 않는군(You don’t talk turkey at all).” 여기에서 ‘talk turkey’가 ‘터놓고 이야기하다’라는 뜻을 갖게 됐다.

호로새를 수입한 '터키 상인'서 비롯

그 후 이 표현은 변화를 겪는다. 사람들은 형용사 ‘cold’를 ‘turkey’ 앞에 넣기 시작했다. ‘talk cold turkey’란 ‘퉁명스럽고 무뚝뚝하게 말하다’를 의미한다. 또 마약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마약 사용을 갑자기 중지하는 것을 뜻하게 됐다. 오늘날에도 ‘go cold turkey’ 하면 마약을 갑자기 끊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cold turkey’란 먹다 남은 음식이 아니라 퉁명스럽게 말하거나 마약을 갑자기 끊는 것을 의미한다.

매년 11월 넷째 주 목요일은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이 첫 수확물을 하나님께 바치며 감사드린 의식에서 비롯됐다. 미국에서 이날은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큰 명절이다. 각지에 흩어져 살던 가족이 모여 함께 음식을 나누며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다. 저녁에는 구운 칠면조 요리, 크랜베리 소스, 감자, 호박파이 등을 먹는다. 필자도 추수감사절이면 미국인들의 저녁 식사에 초대받아 칠면조 요리를 맛본 추억이 있다.

turkey는 칠면조 외에도 ‘바보’ ‘겁쟁이’ 또는 ‘실패작’을 뜻한다. 공교롭게도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관문에 자리잡은 국가 이름도 터키다. 터키인의 조상은 훈족과 튀르크족으로 한자식 이름은 흉노와 돌궐이다. 터키는 6·25전쟁 때 연합군으로 참전해 피를 흘린 전우 국가이기도 하다. 필자와 친한 터키 대사는 국명과 같은 칠면조의 영어식 명칭 때문에 속이 상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칠면조를 터키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칠면조의 원산지는 아메리카 대륙이다. 일찍부터 멕시코의 아즈텍인들에 의해 사육돼 식용으로 쓰였다. 이 새는 어떤 연유에서 나라 이름으로 불리게 됐을까.

호로새(guinea fowl)라는 새가 있다. 이름과 달리 기니가 아니라 마다가스카르가 원산지로, 고기는 단백질 함량이 높고 맛이 좋다. 유럽인들은 일찍부터 호로새를 유럽에 수입했고 수입을 담당한 사람이 바로 터키 상인이었기 때문에 호로새가 터키로 불리게 됐다. 그러나 이 새는 부활절에 먹는 칠면조와는 다르다.

칠면조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스페인과 북아프리카에 퍼졌다. 칠면조와 호로새는 생김새와 맛이 비슷하고 미지의 세계에서 온 색다른 요리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두 새를 혼동하게 됐다. 그 결과 멕시코 원산의 칠면조도 터키에서 온 새라고 착각한 나머지 터키로 부르게 된 것이다.

터키인들은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다. 다만, 다른 실수를 하게 된다. 그들은 이 새를 ‘힌디(hindi)’라고 불렀다. 이 새가 인도에서 왔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했다. 오늘날 프랑스인은 칠면조를 ‘댕드(dinde)’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인도의’라는 뜻을 가진 단어 ‘d' Inde’의 축약형이다.

터키 국명은 '튀르크인의 땅'이란 뜻

역사의 상당 부분은 인류의 실수에서 비롯됐다고 했던가. 여하튼 칠면조는 맛이 있었기 때문에 1520~1530년대에 영국에 수입됐고 1570년대에는 크리스마스에 먹는 표준 요리로 자리잡았다. 이 무렵 칠면조는 미국으로 귀환한다. 기록에 따르면 초창기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칠면조를 가져갔고 현지의 야생 칠면조와 ‘영국 칠면조’를 비교했다. 추수감사절도 원래는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하는 축제가 아니었다. 교회에서 보내는 종교적 휴일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19세기에 국민 통합 목적에서 국경일로 제정됐다.

마지막으로 터키라는 국명을 보기로 하자. 터키는 바로 ‘튀르크인(Turks)의 땅’을 의미한다. 튀르크는 ‘약탈자’나 ‘강한 군인’이라는 뜻도 있다. 오스만 제국이 멸망한 뒤인 1924년 터키의 국부(國父) 케말 파샤가 터키 공화국을 선포했다. 이제 국명과 칠면조의 영어 단어가 같은 데 대해 터키인들이 왜 언짢아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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