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정부와 여당은 100조원 규모의 예산을 올해 안에 모두 집행해달라고 지방자치단체·지방교육청에 요청했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2%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높아지자 예산을 서둘러 집행해서 경기를 떠받쳐보겠다는 것이다. 하강하는 경기를 막지 못하면 내년 총선거를 잡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는 눈치다. 경기가 나빠지면 유권자 표심은 떠나게 돼 있다. 이런 현상은 국회 예산 심사에서도 나타난다.
포퓰리즘적 예산 증액
사상 처음 500조원을 넘긴 2020년 정부예산안에 대해 야당은 무분별한 재정지출이라고 비난하면서 500조원 밑으로 깎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총선’이 다가오자 국회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지역구로 예산을 끌어가기 위해 혈안이다. 깎기는커녕 거꾸로 예산을 증액해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이다.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예산이 더 필요하다는 의원이 많은 것을 보면, 겉 다르고 속 다른 지역구 득표용 예산 요구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고속도로와 지역 중점 산업단지와 관련한 예산 등이 대부분이다. 한번 시작되면 중단하기 어려운 사업들이다. 8개 상임위가 요구한 지출 증가액은 8조2858억원이다. 예산이 증가하면 지역구의 경기부양 효과와 득표에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정치적 경기순환이론
경제학에서는 정부·정치가들이 중요한 선거 승리를 위해 예산을 증액하거나 집행을 독려해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것을 정치적 경기순환이론(Political Business Cycle)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이론은 안정적인 인플레이션과 낮은 실업률이 선거 득표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으로 본다. 그렇기에 정부·정치가들은 선거 전에 경기부양을 위해 확장적인 재정·통화정책을 시행하고, 선거 승리 후에는 풀린 돈을 거두는 긴축정책을 펴 인위적인 경기변동이 생긴다. 정치권이 한국은행에 최저 수준인 기준금리 연 1.25%를 더 낮춰야 한다는 주장과 처음으로 500조원이 넘는 내년도 예산안은 정치적 경기순환이론으로 설명이 된다. 명분은 경제 불황 대응이고 실리는 선거 승리다. 일자리안정자금, 노인일자리 사업, 청년 인턴 지원에 예산이 집중되고 단기 아르바이트를 늘려 고용지표의 일시적인 개선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재정정책을 더 선호하는 이유는?
하지만 정부·정치권은 통화정책보다 재정정책을 상대적으로 더 선호한다. 그 이유를 정책 시차로 설명할 수 있다. 정책 시차에는 ‘내부 시차’와 ‘외부 시차’가 존재한다. 여기서 내부 시차는 ‘인식 시차’와 ‘실행 시차’로 구분된다. 인식 시차란 정책당국이 경제 상태를 인식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 실행 시차는 정책당국이 경제 상태를 인식한 후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다. 외부 시차란 정책 시행 후 정책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통화정책의 경우 중앙은행이 독립적으로 기준금리를 결정하므로 실행 시차가 짧다. 하지만 기준금리가 인하되더라도 그 효과는 금리 인하→대출 증가→투자 증가→총수요 증가처럼 여러 단계를 거치므로 외부 시차가 길다. 반면, 재정정책의 경우 정부의 예산 편성→국회 심사의 기간이 길어 실행 시차가 길다.
국회를 통과하면 즉각적인 정부지출로 총수요에 영향을 줘 외부 시차는 짧다. 정부·정치권이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지자체 예산 집행을 독려하거나 국회에서 예산 증액을 하는 것도 재정지출은 집행되면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풀린 돈은 결국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고 대규모 재정지출은 국민 세금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간다. 정부·정치권은 인위적인 경기변동 정책을 지양해야 한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 jyd541@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