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입구 사거리의 한 카페. ‘대치동 학원가’에 자리잡은 이 카페는 평일 오후 5시에도 만석이었다. 수험서를 펴들고 있는 학생들과 자녀를 데리러 온 40대 주부들로 테이블이 빌 틈이 없었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학부모 사이에선 자율형 사립고와 특수목적고 폐지, 정시 확대 등 입시제도 변화에 대한 최신 정보들이 오갔다. 이 카페 주인인 A씨(39)는 “학원 수업시간이 끝나는 오후 6시와 오후 10시 전후에는 손님이 더 많이 몰린다”며 “저녁 시간에 이 근처 웬만한 카페나 음식점은 자리잡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사교육 1번지’ 대치동 학원가 상권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이곳 상권 월세는 이미 강남구에서 가장 비싸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제도 개편과 맞물려 몸값이 더 높아질 조짐이다.
임대료 1위
대치동 학원가는 도곡역·대치역(3호선) 은마아파트입구사거리 한티역(분당선) 등이 사각형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는 대치1동 대로변과 이면도로에 집중적으로 들어서 있다. 이곳 임대료는 좀처럼 내려올 줄을 모른다. 종로 충무로 명동 가로수길 등 서울 대표 상권 대부분이 침체에 빠진 것과 대조적이다. 서울시 우리마을가게 상권분석서비스 통계(올해 2분기)에 따르면 대치1동 상가의 3.3㎡당 평균 월세는 16만8400원이다. 강남구 상권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압구정동(13만4600원) 역삼2동(13만5900원) 신사동(13만1300원) 등의 평균 월세도 대치동에 크게 못 미친다. 대치동 상권 임대료는 다른 상권과 달리 계속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올해 2분기 월세는 전 분기(14만2400원) 대비 2만6000원 올랐다.
대치사거리 메인 상권에 있는 가게 임대료를 보면 1층 36㎡가 보증금 1억원에 월세 500만원 정도다. 권리금은 1억~2억원 선이다. 3.3㎡당 평균 46만원이다. 분식집을 운영하던 C점포(전용 85㎡)는 권리금 1억2000만원, 월세 800만원에 새 임차인을 찾고 있다. 대로변에서 150m 떨어진 골목에 들어선 전용 36㎡ 1층 매장 임대료는 보증금 4000만~5000만원에 월세 230만~250만원을 형성하고 있다. 권리금은 7000만~8000만원 정도다. 대치동 학원가 상가를 주로 중개하는 R공인 대표는 “대로변을 중심으로 최근 재건축한 신축 상가가 많아 임대료가 더 뛰었다”고 말했다. 전용면적 74㎡ 남짓 김밥집은 한 달에 약 1억2000만원을 벌어들인다. 지하철역과 멀고 대로변에서도 벗어나 크게 좋은 입지는 아니지만 식당은 6년 가까이 무리 없이 장사를 하고 있다. 학원가 수요 덕분이다.
자사고 폐지 수혜 기대
경기 위축 영향으로 대다수 상권이 큰 타격을 입었지만 대치동 상권에 대해선 장밋빛 전망이 우세하다. 정부가 최근 전국 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를 폐지하고 정시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으면서다. 사교육 환경이 좋고 유명 사립고가 많은 대치동 ‘교육특구’로의 쏠림현상이 심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은마아파트 인근 D공인 관계자는 “대치동 부동산 가치를 정부가 띄우고 있다”며 “건물주들이 ‘세입자가 끊길 걱정은 당분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아파트 매매·전세가 강세도 건물주들이 마음을 놓는 이유다. 대치동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면적 84㎡ 전세는 지난달 13억원대에 거래됐지만 현재는 14억5000만원에 임차인을 찾고 있다. 한 달 새 1억원 넘게 올랐다. 매매 물건은 잘 나오지도 않는다. 신축인 대치SK뷰도 소규모 단지지만 신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5일 전용 93㎡ 전세가 15억원에 거래되면서 최고가를 찍었다. 대치동 K공인 관계자는 “‘맹모’들이 전국 각지에서 대치동으로 이동하고 있어 상가 임대료가 더 오르고 건물 가치도 높아질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률 김종률아카데미 대표도 “한때 대치동 학원가 분위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최근 집값이 많이 오르면서 학원가도 덩달아 활황”이라며 “이곳은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드문 상권”이라고 설명했다.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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