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미국 동부 지역에서 디도스 공격이 발생했다. 이번 공격으로 동부 지역의 인터넷 접속이 차단됐을 뿐만 아니라 보안에 강한 넷플릭스, 페이팔, 트위터, 스포티파이, CNN 등과의 주요 서비스도 일제히 중단됐다. 전통 PC 제조사들은 그간 보안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던 터라 당시의 공격을 둘러싸고 많은 논의가 이어졌다. 취약점은 IoT 기기였다. 보안전문가들은 ‘미라이 봇넷’으로 알려진 디도스 공격이 폐쇄회로TV(CCTV), 무선공유기 등 보안에 취약한 IoT 기기를 통해 유입된 것으로 진단했다. 원인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해결책은 아직 찾지 못했다. IoT 기기를 통한 미라이 봇넷과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IoT와 블록체인의 만남
미라이 봇넷이 IoT 기기를 통해 악성코드의 유입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대표적 요인은 IoT 속성 자체에 있다. IoT는 문자 그대로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으로 ‘만물인터넷(Internet of Everything)’이라는 표현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모든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된다는 의미로, 하나의 플랫폼에 TV, 온도조절기, 오디오 등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즉 모든 사물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술인 것이다.
IoT의 장점은 ‘중앙화’를 통해 효율성을 추구한다는 것에 있다. IoT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초연결은 분명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하지만 보안 측면에선 플랫폼만 장악하면 플랫폼에 연결된 모든 기기에 접근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블록체인은 IoT 기술의 특성을 보완한다.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특성을 이용해 IoT 플랫폼에 각 기기가 연결돼 허브로서의 역할은 계속 수행하면서도, 연결된 각각의 기기가 독립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IoT의 효율성은 유지하면서 보안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즉 순차·단계적 방식의 중앙집중형 IoT 플랫폼에서 동시·병렬 방식으로 변모할 수 있는 것이다.
스마트 계약과 IoT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스마트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스마트 계약이란 블록체인을 활용해 계약에 대한 상세한 조건이 충족될 경우에만 코드가 실행될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을 의미한다. 약속한 특정 행동을 달성했을 때에만 가상화폐가 보상으로 제공되는 형태가 대표적인 스마트 계약이다. 전통경제에서처럼 계약을 위해 도장과 서류, 중개인이 필요하지 않고, 그저 약속된 행동을 이행하기만 하면 계약이 성사된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블록체인 기술을 ‘신뢰의 기계’라고 표현한 이유다.
한편 계약에는 반대급부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스마트 계약에서는 약속한 행동을 이행하면 인센티브로 가상화폐가 지급된다. 가상화폐로 인해 더 많은 IoT 기기들은 자사의 플랫폼에 모이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받은 가상화폐는 다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 돼 해당 화폐를 얻는 동기로 작용한다.
기술의 보완재로서 IoT와 블록체인
IoT의 중앙화 방식이 보안에 취약하다면, 블록체인의 분산화 방식은 정보의 수정에 취약하다. 블록체인에 기록되는 정보 자체가 잘못됐음을 발견하더라도 수정하거나 삭제가 불가능하다. 블록체인 기술의 특성상 계속해서 생성하는 분산원장 전체를 수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의 가장 큰 문제다. 이를 ‘최초 1마일 문제’라 하고, 스마트 계약에서는 ‘오라클 문제’라고 한다.
IoT는 최초 1마일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왜곡 없는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량이 공장에서 출고된 뒤 중고차 시장에 판매할 때까지 혹은 폐차할 때까지의 모든 관리 내역을 IoT로 집계해 블록체인으로 관리할 수 있다면 최초 1마일의 문제 없이 차량 이력 관리를 할 수 있다. 역선택이 발생하기 쉬운 ‘레몬시장’으로 알려진 중고차 시장을 ‘피치시장’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이처럼 IoT와 블록체인 기술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며 확장한다. 서로의 잠재력을 깨워줄 수 있는 것이다. 블록체인 기반의 IoT 서비스가 앞으로 149조원 이상의 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기술의 가치는 언제나 상대적이다. 경제·사회적 맥락에서 그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중앙화가 효율적인 분야에 블록체인 기술이 침투하지 못하고, 분산화가 효율적인 분야에서 언제까지 블록체인 기술을 막을 수 없는 이유며, 기술의 보완·발전이 끊임없이 이뤄질 수 있음을 엿볼 수 있는 이유다. 기술에 대한 두려움은 현실이 갖는 문제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다. 기술이 두렵다면 기술 자체가 아닌, 이를 둘러싼 경제·사회적 변화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기술과 관련된 전략과 정책 수립의 출발점은 기술이 바꿀 미래가 아니라 발 딛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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