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지난 1일부터 소비세율을 8%에서 10%로 인상했다. 제2기 아베 정부가 들어선 이후 두 번째 인상이다. 세계적으로 경기가 악화되고 일본의 수출도 내리막길을 걸어 성장세 둔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내려진 결정이다. 그만큼 장기불황 과정에 누적돼온 일본의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국가채무는 경상 국내총생산(GDP)의 230%를 넘는 등 2차 세계대전 당시보다 악화됐다. 정부 재정의 유연성이 떨어져 각종 경비 감축이 만성화되면서 공무원들의 사기에도 악영향을 줄 정도다.
일본 서민들의 가처분소득이 늘지 않는 가운데 이뤄진 소비세 인상은 실질 GDP의 56% 정도에 달하는 소비지출을 위축시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복지지출 확대와 일본 경제의 저성장을 고려하면 추가 인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일본도 유럽 각국처럼 소비세율을 15~20%로 올려야 할지 모른다.
극심한 저출산·고령화, 저성장·저물가, 20% 수준의 소비세 가능성 등 일본이 안고 있는 고민은 한국이 직면할 수 있는 문제들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 경제는 일본 장기불황의 원인이 된 바와 같이 부동산 가격이 70% 정도 폭락하고 20년 이상의 정체 및 은행 부실화가 진행되는 극심한 ‘거품 붕괴’의 가능성은 낮다.
다만 저출산으로 인한 성장잠재력의 하락, 주력산업의 경쟁력 약화, 신흥국의 추격 압박 등은 일본과 비슷한 처지라 할 수 있다. 국가 전체적으로 기초기술력이 떨어지는 불리한 점도 있다. 한국 경제는 일본에 비해 대외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수출에서 활로를 모색할 수 있다. 그러나 보호주의 추세가 확산되고 세계 교역이 위축되는 환경에서는 한국의 대외개방성이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한국 경제의 장기 저성장 가능성을 고려하면 일본의 재정적자 악화 원인과 그 대응책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일본은 장기불황 초기에 이 문제를 ‘경기 요인’으로 해석하고 통상적인 경기부양책을 반복했다. 일본 정부는 장기불황 초기부터 사상 최대 규모의 재정확대 정책을 추진했으나 일시적 효과에 그쳤다.
민간수요가 회복되지 않아 정부수요의 승수효과가 부진했던 탓이다. 장기불황 초기의 기존 공공사업 비효율 문제, 2000년대 후반 복지지출 확대의 효과 부진이 문제가 됐다. 경제의 성장엔진이 고장난 상황에서 쏟아낸 경기부양책은 일시적인 효과에 그쳤다. 불황기의 재정적자를 경기회복기의 재정흑자로 만회하겠다는 재정의 자동안정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장기불황 후 15년 정도 지난 2000년대 중반 이후에나 성장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금융부실 문제의 해결, 저출산·고령화 대책, 성장엔진의 개선에 주력했다면 적은 재정지출로 경제회복 효과를 높일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본 정부도 최근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성장전략을 마련하며 그 누적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해 재정적자의 증가세도 둔화되고 있다. 특히 아베 정부에서는 1인당 소득 증가율이 개선되고 있다. 이는 15~64세 생산가능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여성, 고령자 등의 취업 환경이 개선돼 오히려 전체 취업자 수가 확대된 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베 정권에서는 취업자 1인당 소득 증가율은 부진하고 총요소생산성 증가율도 오히려 하락했다.
결국 생산성을 향상시켜 성장잠재력 제고에 기여하는 재정정책의 효과성을 높이는 노력이 중요하다. 저출산·고령화로 늘어나는 복지지출은 저출산 개선과 함께 모든 성인이 일하는 사회구조 구축에 도움이 돼야 할 것이다. 공공투자도 기존 산업의 고도화, 신성장산업 육성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산업 인프라 구축, 과학기술기반 제고, 대·중소기업·스타트업 간 협력을 통한 이노베이션 생태계 강화에 주력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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