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스페셜 2019의 포문을 연 ‘집우집주’가 ‘집’의 진정한 가치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선사했다.
지난 27일 방송된 KBS 드라마스페셜 2019 ‘집우집주’는 2019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집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앞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집의 가치가 부의 상징이 아니라 삶의 가치의 한 공간으로 작용하면 좋겠다”고 밝혔던 이현석 PD의 바람처럼, 수아(이주영)와 유찬(김진엽)의 신혼집 구하기 프로젝트는 ‘집’이 가지는 참된 의미와 ‘집’에 담긴 진정한 가치를 되짚어준 것.
‘집 우(宇), 집 주(宙)’, 그 안에 사는 이의 우주를 보여주는 집을 만드는 건축디자이너 수아. “타인의 우주를 만드는 일이란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지만, 정작 그녀의 우주는 “싸구려 DIY와 국민가구로 버무린 타협의 나날들”에 불과했다. 지하철 개통으로 자취방 전세금이 오르면서 난감해진 수아는 캠핑용품점을 운영하는 남자친구 유찬에게 때마침 청혼을 받고, 자취방이 아닌 두 사람이 함께 살 신혼집 구하기에 나섰다. 하지만 현실은 수아와 유찬의 생각보다 막막했다. 예산에 맞추면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모든 조건이 좋은 신축 아파트는 예산 과다 초과였다.
“둘이 합쳐서 업그레이드까진 아니어도, 적어도 지금 삶보다 다운그레이드되진 말아야지”라는 수아와 달리, 유찬은 “아파트건 옥탑방이건, 캔버스만 괜찮으면 그 안의 그림은 다시 그리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괜찮은 캔버스’를 살 수 없는 형편인 게 가장 큰 문제였지만 말이다. 신혼집 구하기가 난항을 겪는 가운데, 유찬의 부모님 댁에 간 수아는 큰 충격을 받았다. 털털하고 소박하기만 했던 유찬이 알고 보니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던 것. 반면, 유찬의 집과 비교되는 낡고 오래된 아파트, 누군가 버린 가구를 집에 들이는 아빠(서현철),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엄마(윤유선)의 초라한 행색을 유찬에게 보여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우연히 고교동창 주연(한재이)의 한강뷰 신혼집 의뢰를 맡으면서 더욱 위축된 수아. 결혼하면 사려고 했던 빈티지 오디오까지 주연의 집으로 향하자 씁쓸함이 더해졌다. “집은 무작정 형편 맞춘다고 낮추면서 시작하지 말고. 요즘 세상엔 어느 동네 어떤 집에 사는지가 곧 신분이니까”라는 유찬 엄마(지수원) 앞에서 수아는 결국 해서는 안 되는 거짓말을 시작했다. 주연의 집을 자신의 집이라 말하고, 주연이 일 때문에 집을 비운 동안 주인 행세를 한 것. 수아의 작은 거짓말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지방 출장에서 돌아온 유찬이 집을 찾아가겠다고 하자 주연의 집으로 부모님과 유찬을 부른 데다가, 아빠의 직업까지 감추려 했다.
주연이 집에 돌아오면서 거짓말이 모두 들통나자 수아는 “내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사람을 얼마나 부끄럽게 만드는지”라며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속내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우리 참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잘 모르겠다”는 유찬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난생처음으로 뿌리내린 이 집이, 너를 낳고 키울 수 있었던 이 집이 난 한순간도 부끄러운 적 없었어. 미안하다. 늘 너를 창피하게만 해서”라는 아빠의 사과에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수아. 그렇게 부러워했던 주연의 집이 파혼을 결정한 그녀에게는 위태로운 모래성 같았다는 사실도 뒤늦게나마 알게 됐다.
신혼집 대신, 혼자 살 집을 찾아 나선 수아는 마침내 “그런 집을 만나게 될 거야. ‘아, 내 집이구나’ 싶은 집”이라는 엄마의 말이 떠오르는 집을 만났다. 그리고 자신을 이해해준 유찬 앞에 진짜 자신을 보여주면서 다시 행복한 미소를 되찾았다. “사람이 살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삶의 목표가 되어버리곤 하는 집. 우리를 울고 웃게 하는 이 애증의 공간. 그럼에도 나는 이 지구를 떠나는 날까지 살고, 사랑할 것이다. 나의 집, 나의 우주에서”라는 수아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집’을 수단으로 삼은 많은 이들에게 집에 담긴 나의 우주를 떠올리게 만드는 기회를 선사했다.
‘집우집주’에 이어, KBS 드라마스페셜 2019 두 번째 작품, ‘웬 아이가 보았네’, 오는 10월 4일 금요일 밤 11시 KBS 2TV 방송.
김나경 한경닷컴 연예·이슈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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