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사는 바이오 센서 등 전자부품을 제조해 중국 등 92개국에서 제품 허가를 받은 특허기반 혁신기업이다. 연구개발(R&D)을 기반으로 꾸준하게 성장을 거듭해 생체물질 분석용 측정기 및 분석 방법 등 14개의 국내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올해 초 특허기술 사업화를 위해 자금이 필요했지만 기존 대출이 있어 추가대출이 어렵고 신용등급도 낮아 자금조달이 곤란한 상황을 맞았다.
회사 관계자는 “올해 시중은행에서 출시한 지식재산권(IP) 담보대출 상품의 문을 두드렸다”며 “특허청이 지원하는 특허가치평가 결과를 토대로 지난 6월 10억원의 자금을 대출받아 시설자금, 원자재 구매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24일 특허청에 따르면 ‘지식재산 금융’은 우수특허를 보유하면서도 제품화 및 판로 확보를 위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벤처기업의 자금길을 터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IP금융은 특허권 등 IP의 가치를 평가하고 그 결과를 기반으로 은행, 보증기금, 벤처투자자 등 금융기관이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다.
혁신기업은 R&D에 성공하더라도 이후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필요한 사업화 자금을 확보하기가 매우 어렵다. 정부 출연금 등 정책자금은 R&D 등 사업화 준비단계의 기업에 공급되고 민간 금융자금은 사업화에 성공해 성숙기에 접어든 기업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업화 초기 및 성장단계의 혁신기업에 자금 지원의 공백이 존재한다. 특허청 관계자는 “IP금융은 이런 공백을 메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허기반 혁신기업은 지난해 389건의 IP가치평가 등을 지원받아 IP금융을 통해 총 4537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올해에는 국책은행 외에 다수의 시중은행이 IP담보대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기술보증기금의 IP패스트보증 도입과 신용보증기금이 IP가치평가 업무를 개시함에 따라 올해 IP금융 규모는 지난해보다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IP금융의 주무부처인 특허청은 IP금융 지원정책을 2013년부터 꾸준히 시행해 오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물론 여러 금융기관과 협력을 통해 IP금융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지난 4월에는 금융위원회와 특허청이 7개 시중은행,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과 IP금융 활성화를 위한 포괄적 업무협약을 했다. 그 결과 신한, 하나, 우리, 국민, 농협은행 등이 새롭게 IP담보대출 상품을 출시하는 성과를 냈다.
금융위 발표자료에 따르면 시장에 풀린 자금의 유동성을 의미하는 IP담보대출 잔액이 지난해 12월 기준 3150억8000만원에서 지난 7월 4195억6000만원으로 늘었다. 또 민간은행의 IP담보대출 잔액은 지난 3월 기준 13억8000만원에서 7월 912억6000만원으로 급증했다. 특허청 관계자는 “민간은행의 IP금융에 대한 관심도가 예전과 사뭇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IP금융이 올해 들어 시중은행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금융시장에서 지적되는 대표적인 문제점은 담보IP의 높은 회수 리스크와 IP가치평가 품질이다. 이를 위해 특허청은 IP거래시장의 미흡으로 담보IP의 회수 가능성이 낮은 점을 고려, 은행의 회수 리스크를 경감하기 위한 회수전문기관을 내년에 도입한다. 회수전문기관이 출범하면 IP담보대출 이후 부실이 발생해도 은행이 담보IP를 회수전문기관에 매각할 수 있어 보다 안정적으로 대출을 실행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허청은 IP가치평가의 신뢰도를 제고하기 위해 올해부터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평가심의회를 운영하고 있다. 심의회에서는 평가기관의 가치평가 산정 방식 등을 집중 점검하고 있다. 평가기관 협의회도 열어 우수 평가사례를 선정·공유함으로써 평가인력의 전문성을 제고하고 있다. 공인된 발명의 평가기관으로서 민간기관에 대한 지정을 확대하고 있다. 민간기관이 늘어나면 기관 간 품질경쟁이 촉발되고 평가비용도 낮아질 수 있어서다. 특허청 관계자는 “민간 주도의 지식재산 평가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특허청은 기술혁신형 기업이 우수 특허기술을 개발하고도 자금이 없어 사업화에 실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IP금융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다. 박원주 특허청장은 “스타트업의 특허 확보와 성장 지원 및 특허 수익화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모태펀드 출자를 대폭 늘리는 등 IP금융이 특허기반 혁신기업의 자금길을 터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대전=임호범 기자 lh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