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근로자들의 무표정한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낯선 이방인이어서 의사소통도 쉽지 않았다.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한국에서의 생활이 어떤지 물었다. 3년 전 네팔에서 온 라센드라 라지 파우알 씨가 “좋아요. 돈벌러 왔어. (한 사람을 가리키며) 얘 빼고 다 고향에 집 지을 땅 샀어”라고 툭 내뱉었다.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제서야 표정이 풀어진 듯했다.
경기 화성시에 있는 성일정밀의 외국인 근로자 6명에게 명절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스마트폰 화상 통화로 자주 가족을 보기 때문에 명절이나 이국 땅이라는 의미가 과거와는 많이 달랐다. 그들에겐 야근과 수당이 더 중요해 보였다.
돈 벌러…‘코리안 드림’성일정밀과 관계사인 성일은 오스템 덴티움 등에 납품하는 치과용 의료기기 내외장재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이다. 일감이 많아 다른 업체와는 달리 야근이 줄지 않고 있다. 하루 8시간 기본 근무에 평균 2시간30분 야근을 6일 동안 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월급은 220만원가량이다. 네팔인 라이 라무 씨는 “여기서 100만원을 번다면 고향에서 같은 일을 해 10만원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10배 차이다.
7년 전 고용허가제로 처음 한국 땅을 밟은 미얀마인 킨마웅탄 씨는 성실근로자로 뽑혀 재입국한 경우다. 고향에 있는 어머니, 부인과 17세 된 딸에게 생활비를 보내고도 집터를 살 만큼 알뜰히 저축했다. 파우알 씨는 “대부분 결혼했고 집터도 샀다”며 “한국에서 돈 벌면 다들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한 달가량 특별휴가를 다녀온 파우알 씨는 2주 전 태어난 첫 아들 자랑을 했다. 오세복 성일정밀 이사는 “외국인 근로자를 뽑고 일을 가르치는 데 수개월 이상 걸리지만 이직이 적지 않다”며 “가족 상을 당하거나 아이가 태어나면 한두 달씩 특별휴가를 준다”고 설명했다.
한국 생활에도 어려움은 있다. 마웅탄 씨는 “7년 전보다 소주, 음식 등 생활물가가 너무 올랐다”고 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지 1년이 된 사담 후세인 씨는 음식이 문제다. 그는 주변에 꽤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회사에서 식비를 받아 직접 점심을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듣고 있던 네팔인 라이 라무 씨와 파우알 씨는 반대다. “양념(향신료)이 많이 든 네팔 음식보다 한국 음식을 먹으면 속이 좋아요. 한국 음식은 다 맛있고 프라이드 치킨이 제일 맛있어요.”
“추석 송편 몰라요” 개인 자유시간 선호성일정밀의 외국인 근로자들은 추석의 의미나 송편을 잘 모른다고 했다. 공장 직원들이 한데 모여 명절 행사를 하던 풍경도 옛날얘기다. 이젠 각자 같은 국적의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걸 더 선호한다. 라무 씨는 “수원, 평택, 안산, 천안 등에서 일하는 네팔 친구들이 많다”며 “같이 전통음식을 해 먹거나 술을 마시며 논다”고 말했다.
올 들어 많은 중소기업이 실적 악화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일거리가 줄어 외국인 근로자들이 나가겠다고 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곳도 수두룩하다.
서울 금천구의 한 절삭가공업체 A사장도 마음이 착잡하다. 한때 대기업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부품 생산으로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하지만 거래업체들이 생산시설을 동남아시아 등지로 옮겨간 뒤 일거리가 계속 줄고 있다. 그는 “외국인 근로자들도 서로 정보교환이 활발해서 우리 같은 3D 업종엔 오래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며 “일감은 줄었는데 직원들 월급은 가파르게 오르고 납품단가는 출혈을 감수하면서 경쟁해야 하니까 말 그대로 ‘사면초가(四面楚歌)’”라고 말했다.
화성=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