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그룹 총수들이 26일 저녁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예정에 없던 비공개 ‘합동 간담회’를 했다. 이에 앞서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무함마드 왕세자는 한국에 83억달러(약 10조원) 규모의 ‘통 큰 투자’를 약속했다.
5대 그룹 총수와 무함마드 왕세자의 회동은 이날 오후 8시40분께부터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서 열렸다. 승지원은 삼성그룹 영빈관으로 사용돼온 곳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이 참석해 티타임을 겸한 환담을 나눴다. 청와대 만찬 후 승지원으로 이동한 무함마드 왕세자는 그룹 총수들과 글로벌 경제 현안 등과 관련해 의견을 교환하고 사우디에 대한 투자를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날 오전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83억달러 규모의 양해각서(MOU) 10건에 서명했다. 두 정상은 공식 오찬을 함께한 뒤 에쓰오일 복합 석유화학시설 준공 기념식에도 참석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한 번의 정상회담에서 10건의 MOU가 체결된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초청에 '승지원 회동' 성사…총수들 '세일즈' 총력5대 그룹 총수들이 26일 방한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최고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상대로 ‘세일즈 외교’에 나섰다. 이날 총수들은 공식 오찬, 개별 면담, 공동 환담회 등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무함마드 왕세자와 수차례 만나 친분을 쌓았다.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경제 구조를 첨단산업 중심으로 바꾸고 있는 사우디에서 사업 기회를 찾기 위한 전략적 움직임이란 분석이 나온다.
5대 그룹 총수는 이날 오후 8시40분께부터 삼성그룹 영빈관 역할을 하는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서 무함마드 왕세자와 마주 앉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참석했다. 이날 만남은 예정에 없던 것으로 이 부회장의 초청에 의해 전격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환담은 약 50분 동안 이어졌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총수들에게 사우디에 대한 투자를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관계자는 “투자 현안과 관련해 의견을 나누고 친목을 돈독히 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5대 그룹 총수들은 이와 별도로 이날 오후부터 저녁까지 무함마드 왕세자와 개별적으로 만났다. 사우디는 경제 구조를 석유 중심에서 첨단산업으로 바꾸기 위해 ‘비전 2030’을 발표하고 총 565조원을 투입해 ‘미래형 신도시’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신도시 건설을 무함마드 왕세자가 총괄한다. 이 신도시에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최첨단 기술을 접목할 예정이어서 국내 기업의 ‘먹거리’가 적지 않다.
이재용 부회장은 승지원 단체 환담 직후 무함마드 왕세자와 따로 만났다. 이 자리에서 5세대(5G) 이동통신, AI 등 미래산업 관련 협력 방안이 오갔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부회장이 지난 24일 삼성물산 건설부문, 삼성엔지니어링 경영진과 만나 논의한 ‘설계·조달·시공(EPC)’ 관련 사업도 언급됐을 가능성이 크다.
다른 총수들은 무함마드 왕세자의 숙소인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등에서 이날 오후 개별 면담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무함마드 왕세자와 수소에너지 분야 협력 방안에 대한 깊이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향후 협력하기로 했다. 아민 알나세르 아람코 사장은 전날 정 부회장을 만나 “현대차와 수소에너지 분야에서 협력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최태원 회장은 석유화학 분야 협력 확대 방안에 관해 주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SK종합화학은 2015년 사우디 국영 석유화학기업인 사빅과 합작해 고성능 플라스틱 넥슬렌 생산을 위한 ‘사빅 SK넥슬렌컴퍼니’를 세웠다.
구광모 회장은 사우디 현지에서 정보통신기술(ICT) 사업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빈 회장은 이날 오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 주주총회 참석 일정 때문에 개별 면담을 못했다.
이에 앞서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공식 오찬엔 4대 그룹 총수를 비롯해 조현준 효성 회장,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 등 주요 재계 관계자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합작 조선소 건립, 선박·육상용 엔진 사업 등을 함께 진행한 현대중공업 정 부사장과의 만남을 먼저 제안하기도 했다.
황정수/김재후/김보형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