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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nt's pick] ‘우리들의 일기’ 정한비, 연기와 사람 사이에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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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재 기자 / 사진 김치윤 기자] “좋은 사람이자, 배우로 남고 싶다”

시간은 1980년대, 의상은 검은 교복, 배경은 부산. 세 가지 키워드로 생각나는 영화는 분명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다. 하지만 2017년 기억 밖의 어떤 영화 한 편이 관객 곁을 찾아왔다. 6월1일 개봉한 임공삼 감독의 ‘우리들의 일기’가 바로 그것.

‘우리들의 일기’에서 배우 정한비는 경아를 연기했다. 경아는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원치 않은 빚을 진 채 부산으로 도피한 인물이자, 혼란 속에서 수호(성모)라는 평안을 찾은 행운아. 임공삼 감독은 언론시사회에서 “친구와 첫사랑을 떠올려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라고 밝혔던 바 있다. 경아는 곧 첫사랑의 구체화인 셈. “여성스럽다고 생각하시는데, 남자 같은 모습도 있다”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첫사랑녀’ 경아가 겹쳐 보이는 정한비는 그와 비슷한 색의 역할을 꿈꾼다고 말했다.

Q. ‘우리들의 일기’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는지?

“임공삼 감독님께서 예전에 영화 ‘7번방의 선물’을 보시고 ‘저 예승이 선생님 괜찮다’라고 생각하셨는데, 이번에 ‘우리들의 일기’ 캐스팅 과정에서 마침 나를 떠올리셨다고 말씀하시더라. 그때 회사 이사님 번호까지 수소문하시면서 정말 힘들게 연락을 주셨다고 들었다. 제일 마지막에 투입됐다. 이미 몇 차례 리딩도 진행된 상태였다.”

Q. ‘우리들의 일기’ 경아 역은 비중을 떠나 첫사랑으로서 극의 한 축이다.

“성모가 수호를 연기했고, 경아는 수호의 첫사랑 역할이었다. 사실 뮤직비디오를 제외한 일반 촬영에서 이런 러브 라인이 없었다. 또, 이렇게 긴 호흡으로 누군가와 러브 라인을 가졌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정말 좋았다. 그것만으로도 즐거운 촬영이었다. 그리고 남자들에게는 첫사랑의 존재가 크다고 알고 있다. 극중에서나마 누군가의 첫사랑으로 남아 있는 것이 기분이 좋더라. 애틋한 러브 신들이 있어서 그것도 좋았다.”


경아는 구로 공장에서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는 착실한 개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앞서 소개했듯 집안의 경제적 사정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결국 원치 않은 술 시중과, 노동으로는 갚을 수 없는 빚더미는 그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몬다. 단순한 ‘첫사랑녀’ 아닌 어쩌면 입체성을 띄고 있는 인물. “인물의 연구가 재밌었겠다”라고 묻자 그는 연기의 내적인 부분 대신 인물의 아픔과 현장의 즐거움이 빚어내는 상충을 토로했다.

“촬영하면서 그 부분이 힘들었다. 경아는 힘든 일도 많이 겪고, 게다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도피한 사람이다. 문제는 인물은 너무 힘든 아이인데, 촬영은 정말 즐거웠다는 데 있다. (웃음) 또래들이랑 연기했고, 더불어 스태프 분들과 감독님들 모두 좋은 분들이었다. 이렇게 편하게 촬영했던 적이 처음이다. 그 전에는 선배님들이랑 많이 호흡을 맞췄고, 그것이 주는 괴리감에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경아의 마음을 느끼기 위해서 일기 같은 것도 써보고 노력했다.”

‘우리들의 일기’는 1980년대라는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그 안에는 판타지가 가득하다. 즉, 허구가 가득하다는 이야기. 현실과 허구의 양립 속에서 관객은 대리 만족을 느낀다는 장점이 있지만, 경아와 수호의 만남에는 이것을 감안하더라도 실소가 나오는 부분이 있다. 분명 빚을 피해 부산으로 도망 온 경아. 그런데 나이트클럽에서 즐겁게 술을 마시고, 심지어 이화여대 무용과 출신이라는 거짓도 서슴지 않는다. 이에 관해 기자가 “왜 빚을 피해 부산을 왔는데...”라며 질문을 던지는 중간 정한비는 해당 내용을 간파했다는 듯 나이트클럽 신을 언급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배우들끼리도 그런 이야기 많이 했다. ‘빚을 피해서 도망 왔는데 나이트클럽이나 오고, 너무 날라리 아니야?’라고. 경아가 너무 힘들어 하니까 부산 친구가 기분 전환 겸 데리고 갔다는 생각도 해봤다. 임공삼 감독님께서는 나이트클럽 신에서의 경아는 도도하길 원하셨다. 경아가 못된 친구는 아니다.”

Q. ‘우리들의 일기’가 대중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는지 궁금하다.

“‘우리들의 일기’가 큰 규모의 영화는 아니다. 영화관에서 관도 사실 많이 못 잡았다. 작은 규모다 보니까 이제는 거의 IPTV나 다운로드로 볼 수 있더라. 상업적인 영화들에 비해서 많은 부분들이 부족하게 다가올 수 있다. 갓 연기를 시작한 친구들도 많고, 나를 포함해서 미숙한 친구들도 많고. 고생하면서 찍었다. 30대는 학창 시절을, 윗세대는 옛 추억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Q. 경기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출신이다. 연기를 하게 된 계기는?

“밴드 니아의 전(前) 보컬 전소연 언니가 고등학교 선배다. 프리스타일 미노 오빠랑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웃음) 언니가 오디션을 보러 다니면서 내 사진도 전달됐고, 운 좋게도 가수 대형 기획사와의 미팅까지 이어졌다. 그쪽에서 부모님 설득을 위해 포항까지 내려오시기도 했다. 그런데 계약 기간이 10년이라는 말에 조율 과정에서 없던 일이 됐고, 그때부터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원래 나는 소극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막상 연기를 하니까 쾌감이 있더라. 물론 지금은 연기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지만, 처음에는 흥미를 가졌다. 하다 보니까 욕심도 생기고, 이 일을 좋아하게 됐고, 지금까지 하는 중이다.”

정한비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돋보이는 한 작품이 있다. 일본 TBS ‘KAL기 폭파 23년째의 진실’이다. ‘K 프로젝트’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에서 그는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의 테러범 김현희를 연기했다. 이에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아우르는 재원이라는 특징이 캐스팅의 배경이라는 당시 보도 자료를 언급하니 그는 “많이 과장됐다”라며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또한, 과장된 홍보 자료를 내보냈다는 말과 함께 손사래를 쳤다. “성형을 안 하고, 김현희와 닮은 사람을 찾는 미팅이었는데 내가 다행히 그쪽에 부합된 것 같다. 거기에 중국어도 잘하니까. 영어는 사실 못한다. 일본어는 녹음을 듣고 따라하는 정도였다.”

사료(史料) 속 인물을 연기하는 것 아닌 피해자의 가족과 가해자 모두 동시에 숨을 쉬고 있는 현대의 인물을 공연하는 일. 데뷔 1년 만의 주연작이라는 기대감과, 역사와 지금의 경계선 위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부담감 모두 컸을 테다. “김현희의 일대기를 다루는 드라마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한국에 잡혀왔을 때까지 김현희 중심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부담은 물론 있었지만, 그때는 뭣도 모를 때라서 즐거운 마음으로 촬영했다. 청주를 포함한 여러 곳에서 거의 2주 동안 촬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서운 것도 있었다. 김현희가 북한에서는 공공의 적인데 혹시 나에게도 피해가 오지 않을지 두려움도 있었다.”

Q. 데뷔작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tvN의 야심작 ‘세 남자’다.

“골프웨어 샵 직원 정윤희 역이었는데, 약간 ‘된장기’ 있고 할 말 다하는 그런 인물이었다. 뭐라고 해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이야기하는. Mnet ‘슈퍼스타K1’이랑 같은 시간대에 붙어서 시청률은 저조했지만, 나한테는 데뷔작이다.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지금은 정한비라는 이름을 쓰지만, ‘세 남자’ 때는 정윤희로 활동했다. 몇 년 전 ‘7번방의 선물’에도 나오고 이제는 모두가 나를 정한비로 알 텐데, 갑자기 어떤 분이 ‘혹시 정윤희 씨 아니세요?’라고 여쭈시더라. 너무 깜짝 놀랐다. 나의 처음을 기억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세 남자’ 다음의 화제는 공교롭게도 같은 방송사의 ‘시그널’이었다. 2009년 데뷔한 정한비는 그간 많은 작품들에서 ‘정한비 스타일’ 연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유독 tvN ‘시그널’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다른 작품들을 제치고 자체발광 중이다. 여기서 그는 법의학자 오윤서를 연기했다. 극중 차수현(김혜수)은 이재한(조진웅)과 비슷한 조건의 사체가 신고될 때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달려간다. 이때마다 그가 마주하는 것은 신원 미상의 사체 그리고 법의학자 오윤서. ‘시그널’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김원석 감독님의 팬이다. tvN ‘미생’을 보고 ‘한국에 이런 드라마가 나올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나중에 꼭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었는데, 처음 미팅에서 내게 칭찬을 많이 해주시더라. 오윤서 역할도 리딩하고, 범인 역할로도 리딩했는데, 결국 법의학자에 캐스팅됐다. 오윤서는 시크한 느낌의 인물이다. 그동안 여성스러운 캐릭터를 많이 했지만, 분명 내 안에도 그런 느낌이 있다. 그런 느낌, 그런 색깔의 인물을 소화키 위해 법의학자님도 뵙고 그랬다. 감독님이 정말 꼼꼼하시다. 긴장 바짝 하고 재미있게 촬영했다.”

Q. 차기작은?

“예전부터 감정 기복이 큰 역할을 하고 싶었다. 영화 ‘블루 재스민’에서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했던 그런. 사실 작년에 찍은 영화에서 비슷한 경험을 해봤다. 정말 재밌었다. 개봉은 아직 못했지만, 가제가 ‘배우 지망생’이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등장 인물이 범인을 목격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작품이다. 중국에서 투자 받았는데, 사드 문제 때문에 후반 작업이 미뤄지고 있다. 내가 연기했던 인물이 극중에서 키를 잡고 있어서 기대가 크다. 사실 ‘우리들의 일기’도 2년 만에 개봉했다. 빨리 나왔으면 좋겠는데, 지켜보겠다.”

Q. ‘우리들의 일기’에서 현수는 수호에게 엄마라는 단어를 재정의한다. 엄마는 자식이 부르는 이름이기에 원하지 않으면 엄마가 아니라고. 배우도 마찬가지 아닌가. 대중의 언급 속에서 배우는 특징을 갖는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좋은 사람이자, 배우로 남고 싶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기운을 줄 수 있고, 대중이 나를 봤을 때는 ‘그 친구 연기 잘하지’라는 말만 들어도 정말 좋을 것 같다. ‘저 친구는 눈이 좋아’라는 표현도 좋겠다. 배우는 눈이 많이 중요하다. 배우뿐 아니라 사람은 눈을 보면 다 알 수 있다. ‘눈이 참 좋은 배우구나’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 정도라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배우를 꿈꾸는지?’라는 물음은 문장 마지막의 마침표처럼 인터뷰를 종료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 인간은 미래를 향해 전진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질문은 현장의 모두에게 희망을 선사하기 때문. 그런데 해당 질문에는 유독 공통된 대답이 잦은 빈도로 기자에게 전달된다. 바로 ‘좋은 사람’이란 표현이다. 이에 “축구 선수가 현란한 개인기로 골을 넣는 것처럼 배우도 혼자 연기를 잘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배우들이 좋은 사람을 꼭 말한다”라고 묻자, 정한비는 “혼자서 살아갈 수는 없다”라는 말로 운을 뗐다.

“다 누군가와 같이 상호 교류를 통해 살아간다. 어릴 때는 잘 몰랐다. 그런데 생각하는 것이 많이 바뀌더라. 자주 만나면서 교류하고, 그들한테 좋은 기운 주면 나도 좋고. 좋은 에너지를 가진 분들을 뵈면 나도 치얼 업(Cheer Up) 되고. 그때마다 느낀다. ‘나도 저런 사람이 돼야겠구나’라는.”

인터뷰가 종료된 시각은 오후 3시와 4시의 정확한 가운데였다. 저녁의 서늘함은 아직 한참 멀었지만, 분명 하루 중 가장 더운 때가 지나고 운신하기 가장 좋은 시각. 바야흐로 연기와 사람을 연관 지어 이야기하는 9년 차 배우의 시각이었다.(사진출처: 은하수엔터테인먼트, bnt뉴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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