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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프리즌’ 김래원, 유(有)에서 무(無)를 추구하는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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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재 기자] “특정 이미지에 갇히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

김래원은 멜로 혹은 로맨틱 코미디가 잘 어울리는 부드러운 이미지의 배우다. 지금 당장 기자의 머릿속에 생각나는 김래원식 로맨스가 발휘됐던 대표작들을 나열하자면, 적어도 두 편에서 세 편 이상은 능히 답할 수 있을 정도. MBC ‘옥탑방 고양이’, 영화 ‘...ing’와 ‘어린 신부’, SBS ‘러브 스토리 인 하버드’ 등 하나 같이 주옥같은 작품들뿐이다.

그런 그가 달라졌다. 대가 김수현 작가의 집필로 화제를 모았던 SBS ‘천일의 약속’까지만 하더라도 기억을 잃은 여자를 지키는 남자 박지형을 연기하며 순애보를 펼쳤지만, 몇 년 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더 이상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은 없었다. SBS ‘펀치’에서 김래원은 사랑의 공감보단 그만의 색을 드러내며 믿고 보는 ‘멋남’ 배우로 변모했다.

“벌써 2년이나 지났다. 사실 31살 때부터 많은 고민을 겪었다. ‘나는 이제 청춘 스타가 아니구나. 이 길로 유지하는 것은 힘들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배우가 나이를 먹어가며 걸을 수 있는 무난한 흐름이 떠올랐지만 내 집요한 열정에 그건 또 성에 차지 않았다.”

“그때서야 배우로서 가야할 길이 보였다. 영화였다. 그래서 내가 영화배우 김래원으로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손에 꼽힐 수 있을지 주변에 물어봤다. 물론 지인들은 모두 긍정적으로 얘기했지만, 지금의 소속사 대표님만이 부정적으로 말씀하시더라. ‘그건 모르지. 될지 안 될지.’ 너무 솔직하게 말씀하셔서 딜레마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다른 마음으로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강남 1970’도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 ‘펀치’도 그 연장선이었다. 늘 하던 거 똑같이 하는 것보다 다른 목표를 쫓고 싶었다.”

고민은 문제의 발견이다. 그리고 대다수는 문제의 정정에 어려움을 느끼고 그것을 사고의 창고 속에 처박기 일쑤다. 반면 김래원은 달랐다. 고민에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서 해답을 찾아내며 역시 ‘갓래원’다운 진화를 이뤄냈다. 그리고 하던 것이 아닌 다른 목표를 쫓던 그가 선택한 또 하나의 영화가 스크린에 개봉했다. 영화 ‘프리즌(감독 나현)’이다.

완전 범죄를 설계하는 죄수들의 왕과 교도소에 수감된 꼴통 형사의 범죄 액션을 다루는 이번 영화에서 김래원은 한때 검거율 100% 경찰이었던 죄수 번호 3260 유건 역을 맡았다. 선배이자 낚시 친구 한석규에게 연기 호흡을 종용 받던 그는 마침내 ‘프리즌’을 통해 연기 앙상블을 이뤄냈고, 너무도 가까웠던 형님과 동생은 일터에서 대립을 연기했다.

“한석규 선배님과 언제 같이 연기할지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곤 했다. 그렇기에 선배님이 계셨던 ‘프리즌’을 마다할 이유가 없던 것이 사실이다. 촬영하는 동안에는 다른 동료들이나 스태프들이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평소 친분과 달리 선배님에게 예의를 갖췄다. 너무 선을 그었는지 선배님이 같은 동료니까 소통하자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함께 갔던 마지막 낚시에서 ‘프리즌’ 출연 결정을 선배님에게 말씀드린 적이 있다. ‘형님, 저 하게 됐어요’라고 소식을 알려드리니 ‘잘했다’고 칭찬해주시더라. 영화사나 배급사보다 선배님이 먼저 아시게 된 셈이었다. 며칠 뒤에 영화사에 출연 결정을 말씀드렸는데, 그때까지 회사가 내 선택을 모르고 있어서 선배님의 진중함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한석규와의 인연이 ‘프리즌’ 선택의 주된 이유였다고 말하는 김래원에게서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이의 자신감이 느껴졌다면 과장일까. 더불어 김래원은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흥미로웠다”며 나현 감독이 집필했던 대본을 출연 동기로 꼽았다. ‘프리즌’이 첫 연출작인 나현 감독은 ‘화려한 휴가’ 등을 썼던 인정받는 각본가기도 하다.

“사실 ‘왜?’라는 의문이 먼저 들더라. 감옥이라는 낯선, 호기심이 동하는 공간 안에서 뭔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궁금증을 자극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교도관이 죄수를 통제하지만 이 영화는 바뀌어 있더라. 심지어 익호는 교도소 바깥 공간마저 움직이는 인간이고, 더불어 감옥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흥미를 자극했다.”

감옥은 죄인을 가두어 두는 곳이다. 범인(凡人)이라면 누군가의 면회 때문에 방문하지 않는 이상 한 번도 접하지 못할 공간. 한때 형무소로 불렸고 이제는 교도소로 재정의된 그곳에서 등장인물들은 먹고, 자고, 갈등하고, 화해하고, 반목한다. 김래원이 연기했던 유건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 음지의 공간은 21년 차 배우에게도 심히 낯선 땅이었다.

“공간 자체가 생소하고, 낯설고, 싸늘했다. 그 낯선 공간에서 아무리 자연스럽게 연기한다고 노력해도 죄수복을 딱 입고 나오면 무의식의 낯섦이 화면에 보일 수 있겠더라. 그래서 현장에 한 두 시간씩 일찍 나왔고, 끝나고 나서도 늦게 가고 그랬다. 내 촬영이 없는 날에도 낮에 한번 가보기도 했다. 그런 노력들이 영화에도 드러나지 않았을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누구나 아는 그 말을 모두가 실천하진 않는 것이 현실. 그렇기에 삶은 승자와 패자는 없지만, 노력했던 이와 노력하지 않았던 이가 공존한다. 김래원은 전자로, 세상은 땀방울을 흘렸던 그에게 영롱한 황금빛 트로피들을 부여했다. 그러나 그는 상에 큰 가치를 느끼지 않는 듯 보였다. 딱 하나만 빼고.

“상은 주면 감사하고 고마운 정도의 의미다. 다만 저에게 굉장히 의미를 가지는 상이 하나 있다. 20살 때 영화 ‘청춘’으로 ‘청룡영화제’ 최연소 신인상을 받았다. 앞에 박신양 형이 받고, 뒤에 정준호 형님이 받았으니까 격차가 15년씩 나는 어린 사람이 받았던 셈이다. 그게 저한테는 컸다. 냉정히 말해서 좋은 감독님을 만나서 그렇게 됐다.”

마지막으로 김래원은 청춘 스타였던 20대 시절을 회상하면서 배우의 길 대신 올바르지 않던 마음가짐의 과거를 후회했다. 지키려고만 했지 새로운 것을 찾지 않았다고 회상에 잠겼던 그는 더불어, 30대인 지금은 마치 다른 장르의 직업에 서있는 것 같다는 말로 정유년(丁酉年)을 축하했다. 만 36세에 다다른 배우의 만족이 인터뷰 장소를 휘감았다.

“MBC ‘옥탑방 고양이’로 대중에게 자리매김하면서 한 달 동안 광고를 약 일곱 편 정도 찍었다. 돌이켜 보면 20대 초중반이었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그때는 마음가짐의 방향이 올바르지 못했다. 청춘 스타라는 것에 힘입어 지키려고만 했고, 내가 가고자 했던 새로운 방향을 찾지 않았다. 물론 20대만이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30대가 되니까 시야가 달라지더라. 20대와 30대의 연기가 다르듯이 나는 지금 30대 배우로서 과거와 전혀 다른 장르의, 다른 직업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인터뷰에서 만났던 김래원은 솔직함이 돋보이는 배우였고, 자신을 휘황찬란하게 포장하는 대답보다 시원시원한 답변들을 테이블 위로 올려두며 취재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긍정을 내포하는 진실성 가득한 이야기들이 부정을 상기하는 즉흥성은 배제한 채 기자의 귀에 콕콕 박혔으며 그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자신의 이미지에 관한 문답이었다.

김래원은 대중이 그를 떠올렸을 때 어떤 느낌을 원하는지 묻는 질문에 “그냥 아무 생각 안 하셨으면 좋겠다”며, “특정 이미지에 갇히지 않는, 영화가 개봉할 때 이름만으로도 믿고 즐기실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과연 김래원은 무(無)이면서 동시에 유(有)인 연기의 고수로 거듭날 수 있을까. ‘프리즌’에 한정한다면 기자의 대답은 긍정이다.

한편 영화 ‘프리즌’은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사진제공: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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