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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바윗길을 가다(8) 인수봉 구조대길 / 명품길로 자리 잡는 ‘인수의 실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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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률 기자] 대한민국 록 클라이머의 요람 인수봉에 또 하나의 새로운 바윗길이 탄생했다. 바윗길의 주인공은 구조대길, 이름이 말해주듯 이 길은 북한산경찰산악구조대 강왕석 대장을 포함 김선종, 김명석, 박상기 네 명의 개척자가 2010년 7월11일부터 15일까지 개척한 바윗길이다.

사실 원조 구조대길은 대둔산에 있다. 모두 열 한 마디에 이르는 대둔산 구조대길은 티롤리안 브리지까지 더 해져 무척 인기 있는 코스이다.

인수봉 구조대길 개척보고서를 보면 "리지 코스가 부족한 인수봉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멋있는 코스를 만들자고 시작,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였으나 리지 코스라고 하기에는 벅찬 코스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개척자들은 "나름대로 슬랩, 침니, 크랙 등의 다양한 등반요소를 갖춘 아름다운 코스가 탄생했지만 등반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의 평가가 어떠할 지 조심스런 마음이 앞선다"고 장장 열 두 마디의 새로운 길을 낸 주인공들 답지 않게 겸손하게 말했다.

여기서 흔히 '구조대'라고 부르는 경찰산악구조대는 대한산악연맹 소속 대학생 7명의 사망사고가 일어난 1983년도에 설치되었다. 북한산경찰산악구조대는 매년 6~7건의 인명사고가 일어나는 북한산에서 매년 40~50건의 산악사고를 처리하고 있다. 올해 2월초까지는 김창곤 경위가 6년 8개월 동안 대장을 맡았다.

다시 개척보고서를 훑어보면 모두 열 두 마디, 각 25미터에서 30미터에 이르는 각 마디들은 2인1조 등반시 약 5시간이 소요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열 두 마디라면 모두 80개를 헤아리는 인수봉 바윗길에서 가장 긴 마디수다. 정확한 거리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인수봉 바윗길에서 가장 긴 것으로 보인다. 구조대길 이전에 인수봉에서 가장 긴 바윗길은 크로니길로 아홉 마디 237미터이고 이와 버금가는 동양길은 모두 8마디에 209미터이다. 열 두 마디를 다섯 시간에 등반할 수 있다면 등반실력이 5.13급 정도 되는 탁월한 등반능력의 소유자이거나 아니면 난이도가 아주 쉽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기자는 막연히 후자쪽에 무게를 두었다.


낮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8월의 무더운 날씨에 개척보고서에 나와 있는 대로 들머리를 찾아 나섰다. 도선사주차장에서 일행을 만난 것이 오전 9시, 장비가방을 매고 하루재까지 쉼없이 올라 곧바로 경찰구조대까지 내리꽂는다. 구조대 가기 전에 우측으로 빠져 비둘기샘에서 찬 물로 땀을 식힌 후 보물찾기 하듯 '껍질이 벗겨진 소나무'와 '조그만 슬랩' 그리고 'U자형 나무'를 지나치니 구조대길 첫 마디. 하얀 페인트로 씌어진 '구조대길'이 선명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구조대길 첫 마디에는 한 등반팀이 이제 막 출발을 하려는 참이었고 등반선을 따라 시야가 보이는 곳까지 고정확보지점마다 등반객들이 매달려 있다. 새로 개척된 길이라 그럴까? 아니면 그만큼 재미있는 바윗길이라서 그럴까? 이번에도 기자는 애써 두번째 이유일 것이라고 단정 짓고 출발준비를 한다. 우리팀이 출발을 시작했을 때 뒤로는 벌써 10 여 명의 등반객들이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째 마디는 마음 편하게 출발할 수 있는 슬랩길이다. 5.9의 난이도이지만 가쁜 숨을 돌리면서 가볍게 오를 수 있다. 다만 첫 마디는 습기가 차 있어 미끄럽다. 등반선을 따라 확보지점마다 등반자들이 대기하는 바람에 마디 마디를 마치고 대기하는 것이 약간은 등반의 리듬을 깬다.

둘째 마디는 가느다란 실크랙을 이용해서 올라가는 슬랩이다. 기자는 둘째 마디를 출발하다 바위 표면이 부스러지면서 슬랩을 먹고 바위 등을 치는 바람에 왼쪽 무릎 정강이에 작은 부상을 입었다. 아직까지 많은 등반이 이루어지지 않아서인지 길이 투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난이도는 5.9.

둘째 마디를 마치고 확보를 하고 나니 두 분의 원로 산악인들이 쉬고 계셨다. 연세가 60중반쯤 되셨을까? 젊었을 때 인수와 선인을 호령하셨을 두 분은 저 멀리 보이는 바위길을 가리키며 옛날을 회고하고 계셨다. 고은의 시 ‘그꽃’의 시구처럼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의 바로 ‘그 꽃’들을 보고 계신 듯 했다. 두 분은 정강이에서 피를 흘리는 기자를 보고 일회용 반창고를 세 개나 주셨다. “빌려준 반창고는 다음에 다친 사람을 만나걸랑 돌려주라”면서.


셋째 마디는 크랙으로 출발하여 왼쪽의 침니길이나 중간에 오른쪽 턱을 넘는 두 개의 코스가 있다. 침니길의 난이도는 5.8이고 오른쪽 코스의 난이도는 자유등반을 할 때 5.10a라고 한다.
답답한 침니를 벗어나면 넷째 마디에서는 인상적인 T자형 크랙이 기다리고 있다. 딛기 좋은 크랙에 발을 재밍하여 올라서서 우측으로 조심스럽게 이동하면 된다. 다섯째 마디는 슬랩등반으로 왼쪽으로 오르다가 작은 칸테를 넘어 가는 난이도 5.8의 쉬어가는 구간이다.

여섯째 마디는 구조대길에서 처음 만나는 난이도 5.11b의 준 크럭스 구간이다. 난이도가 높은만큼 완강한 근력이 필요하다. 선등자도 주의를 하여야 하고 후등자도 추락하면 다시 오르기가 어렵기 때문에 퀵드로우를 이용한 인공등반을 시도하는 것이 낫다.

출발지점에서 언더 크랙을 잡고 왼발을 왼쪽으로 넓게 벌린 다음 왼손을 가운데 크랙을 잡은 상태에서 오른 손으로 오른 쪽의 턱을 밀면서 오른 발을 올리는 것이 포인트. 왼편으로 넘어간 다음에는 크랙을 잡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여섯째 마디를 마치면 왼편으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바위문이 나오는데 이곳을 통과하면 왼쪽으로 고독길 2피치 확보지점이 보인다. 바위문 앞은 그늘이 져서 시원하기 때문에 점심식사를 하기에 좋은 장소다. 이곳에서 우리 등반팀도 점심식사를 했다. 등반중엔 많이 먹지 않는 기자가 빵 하나로 식사를 대신하고 후식으로 과일을 먹으니 벌써 졸음이 몰려온다.

일곱째 마디 출발지점의 오른쪽 구멍을 통과하면 고독길로 가는 길이다. 왼쪽의 슬랩성 바위를 넘어가야 한다. 난이도 5.7. 왼쪽으로 오를 수도 있고 오른쪽의 침니성 구간을 두 발을 이용한 침니등반으로 오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우리팀은 한 시간 가까이를 기다려야했다. 아마도 앞 팀의 선등자 속도가 느리거나 생초보 등반자가 있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일행중에는 “앞팀 빨리 가라”는 불만도 터져나왔다.

그러나 앞팀이 늦은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여덟째 마디는 구조대길의 크럭스다. 크랙등반으로 오르는 직상코스이며 자유등반을 할 때 난이도가 5.11b에 이른다. 초급자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볼트가 많이 설치되어 있어 사다리를 걸고 인공등반으로 올라간다면 큰 무리는 없다.

아홉째 마디는 슬랩등반이다. 가운데에 커다란 크랙이 있기 때문에 쉬워 보이기는 하지만 손과 발을 딛는 홀드가 썩 좋지는 않다. 마지막 구간은 직벽이기 때문에 집중이 필요하다.

열 번째 마디는 크랙구간으로 레이백으로 오르는 구간이다. 난이도는 5.10a. 홀드는 대부분 흘러내리고 있어 힘을 받는 홀드들을 잘 찾아내야 한다. 열 번째 마디를 통과하면 어려운 구간은 모두 끝난 셈이다. 이 구간이 끝나면 비로소 시원한 전망이 펼쳐지면서 주위의 전경들이 한 가득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위로 나폴레옹 모자를 닮은 귀바위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취나드b의 끝지점이 보인다.

열 한번째 마디는 취나드b의 상단을 이용하여 오르다가 왼쪽으로 나있는 슬랩길을 마저 오르면 된다. 난이도는 5.6.


마지막 열두번째 마디는 귀바위의 정상 바로 아래지점이다. 크랙이 끝나는 지점에서 볼트따기로 넘어서서 슬랩을 이용하여 정상에 오르는 구간이다. 모두 열 두 마디에 이르는 대장정의 막을 내리는 순간 사위는 이미 어두워져 있다.

이곳에서의 하강은 여러 코스로 진행할 수 있다. 아직까지 시간과 체력이 남아있다면 이곳에서 계속 등반하여 인수봉 정상으로 올라 비둘기길로 하강하여도 되고 벗길이나 의대길로 하강해도 된다.

우리 일행은 의대길로 하강 방향을 잡았다. 어느새 솟아오른 달과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며 60미터 하강을 하니 의대길의 볼트따기 지점이다. 하강출발지점에서 이곳까지는 정확히 60미터이기 때문에 자일의 마지막 부분을 벨트에 묶어 두어야 한다. 이곳에서 오아시스까지 다시 60미터 하강 그리고 일명 '소슬랩'까지 세 번째의 하강을 마치니 시간은 밤 9시, 등반에만 모두 열 한 시간이 걸린 대장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구조대길은 완등을 하기 위해서 적지 않은 시간과 체력, 등반기술을 종합적으로 필요로 하는 바위길이다. 최근 구조대길에 대한 소문이 빨리 퍼지면서 주말에는 등반객들이 줄을 선다. 때문에 이른 아침에 등반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전날 야영장에서 야영을 하고 아침 일찍 등반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날 저녁에도 인수 야영장에는 야영을 하는 등반객들의 랜턴 불빛들이 어지러웠다.

매주 토요일에 등반을 하는 하람산악회의 송기승 대장은 이날 구조대길을 온사이트로 선등하고 소감을 말한다. "구조대길은 다른 곳도 모두 나름대로 괜찮은 바위길이었지만 특히 여덟, 아홉, 열번째 마디에서 등반의 묘미를 느꼈습니다. 구조대길은 지구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일명 '노가다길'이라고도 하지만 다양한 등반의 기술을 요구하는 인수봉의 명품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열 시간이 넘는 등반을 하다 보니 하루 종일 빵 한 개로 버틴 체력은 바닥나고 갈증은 극에 달했다. 하강을 마치니 이날 함께 등반한 아홉 명의 수통은 단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두 다 떨어졌다. 여름철에는 얼린 물 한통과 얼음물 한통으로 1인당 최소 2리터 이상의 물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달빛의 도움을 받은 등반, '인수봉의 실크로드' 구조대길은 인수봉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길이다. 진정한 등반의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행복과 기쁨을 안겨주는 길이다. 인수의 인기 있는 명품길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길이다. 수도권의 해외원정등반 체력훈련으로도 좋은 바위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도전의식이 없거나 평소 체력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등반자라면 이 길은 '노동의 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새로운 모험에 도전하고 싶은 클라이머들이여 구조대길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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