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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기술혁신 가로막을 '상생법'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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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 中企 교체 어려워지고
기술탈취 입증 책임
대기업에 떠넘기는 것도 문제

중기부가 처벌권 갖게 되면
중복 처벌 우려도 커져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가 최근 아주 묘한 법안 하나를 공청회 한 번 없이 통과시켰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이 개정안은 임시국회가 열리면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가을 정기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그런데 이 개정안을 두고 기업 환경을 악화시키는 또 하나의 규제법이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수탁기업인 중소기업이 위탁기업인 대기업에 납품계약과 관련해 ①기술자료를 제공하는 경우 반드시 별도의 ‘비밀유지협약’을 맺어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②‘비밀유지협약’이 붙은 납품계약이 체결되면 위탁 대기업은 수탁 중소기업이 납품하는 물품과 유사한 물품을 자체생산하거나 제3자에 유사 물품을 생산하게 할 수 없다. ③ 위탁 대기업이 이를 위반하면 ‘기술유용행위’로 추정해 ④위탁 대기업을 처벌한다.

개정안은 첫째, 비밀유지협약 체결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어떤 경우에 반드시 비밀유지협약을 맺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기술자료를 제공하는 경우’가 유일한 기준인데 하찮은 기술이나 이미 개방된 기술도 기술자료만 제출하면 협약을 체결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수탁 중소기업으로서는 자신이 생산하는 모든 제품에 대해 비밀유지협약을 맺으려 할 것이다.

둘째, 한 번 납품계약을 맺으면 위탁 대기업은 납품 중소기업을 교체하기 어렵게 된다. 자체생산이나 제3자와의 새로운 계약을 통해 ‘유사’한 물품을 생산하면 기술유용행위로, 시정명령과 함께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납품계약기간이 끝나도 기술유용행위로 추정될 수 있으므로 마찬가지로 다른 업체와 계약할 수 없다. 이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더 값싸고 혁신적인 제품을 공급하겠다는 자가 나오면 당연히 납품처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이래서는 기술혁신도, 진보도 있을 수 없다. 유사성 판단 역시 문제다. 정밀화학제품은 규명이 불가능한 다수의 소재로 구성되는 사례도 많은데 누가 어떻게 제품의 유사성과 상이성을 구분할 것인가.

셋째, 기술유용 추정이 문제다. 추정(推定)이란 반대의 증거가 있으면 법률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이때 반대의 증거를 누가 제출해야 하는가는 재판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문제다. 이를 증명책임이라 한다. 민사사건에서는 보통 어떤 사실을 주장하는 자에게 증명책임이 있다. 그러나 형사사건에선 무죄추정의 법리상 검사가,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고발되는 경우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위법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상생법 위반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위법 사실을 증명해야 맞다. 그런데 개정안은 기술유용이 일단 추정되므로 ‘법 위반 사실’이 아니라 거꾸로 ‘법 위반이 없다는 사실’을 중기부가 아니라 위탁기업이 증명하도록 했다. 관련 제품에 대한 모든 정보는 납품업자인 수탁기업이 갖고 있기 때문에 위탁기업이 증명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중기부 스스로가 해야 할 책임을 위탁기업에 떠넘겨 자신의 업무를 방기하는 처사고 법리에도 맞지 않는다.

넷째, 현재 중기부가 상생법 위반을 발견하면 공정위에 위반자에 대한 처벌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런데 개정안은 중기부에 직접 처벌권을 부여한다. 한편 기술유용은 공정위가 관리하는 하도급법상 처벌 대상인 ‘기술탈취’에 해당한다. 이제 위탁 대기업은 중기부와 공정위로부터 같은 사안에 대해 중복 조사, 중복 처벌 또는 양쪽으로부터 상이한 처벌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 법안은 중기부와의 교감하에 입안됐을 텐데 힘이 세진 중기부가 이참에 공정위에 버금가는 ‘제2의 경제 경찰’이 되고 싶은 모양이다.

상생법의 입법 취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자율적 상생노력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하도급법과 같은 규제법이 아니었다. 개정안에 따르면 상생법이 하도급법을 능가하는 강력한 규제법으로 바뀌게 된다. 복합적 경제 위기가 닥친 엄중한 시기에 이런 자율규범적 법률마저도 규제법으로 둔갑시키는 국회 산자위의 재주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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