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2020 예산안 협의
'초팽창 예산' 논란
민주당 "확장적 재정운용"
수십조 적자국채 발행 불가피
[ 임도원/김우섭 기자 ]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글로벌 금융위기 때나 하던 ‘초(超)팽창 예산’ 편성을 정부에 주문했다. 내년에 올해 대비 두 자릿수 증가율을 통해 최대 530조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하라는 요구다. 민주당 요구대로 예산을 편성하려면 수십조원의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재정 악화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재정 살포’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올해 대비 최대 60조원 늘린다
민주당 의원들은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정 협의에서 구윤철 기획재정부 2차관 등 정부 측 참석자들에게 내년에 510조~530조원의 예산을 편성할 것을 주문했다. 올해 예산(469조6000억원) 대비 8.6~12.9% 늘어난 규모다. 각 정부 부처가 올해 기재부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기금 총지출 요구액(498조7000억원)보다 2.3~6.3% 많다.
윤관석 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은 당정 협의 후 “경기 대응과 혁신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년 예산은 더 확장적 재정운용 기조를 가져가기로 했다”며 “예산 집중성을 높이고 시급성을 반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최대 규모인 530조원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510조원으로는 경기 대응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내년에 예산이 두 자릿수 증가율로 편성되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10.6%) 후 첫 사례가 된다. 내년 경상성장률(정부 예상 4%대 초반)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총예산이 500조원을 돌파하는 것도 사상 처음이다. 2017년 400조원을 넘어선 데 이어 문재인 정부 3년 만에 100조원 넘게 불어나는 급증세다. 민주당은 미·중 무역전쟁과 일본의 경제보복 등 대외 경제 여건 악화로 확장 재정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은 당초 일본의 경제보복 관련 대응 예산으로 내년에 ‘1조원+α’를 편성해야 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이날 당정 협의에서는 ‘2조원+α’로 요구 금액을 확대했다.
민주당은 내년 4월에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어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어렵다는 점도 초팽창 예산 편성의 근거로 들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총선으로 국회가 새로 구성되는 해에는 물리적으로 추경 심사가 불가능하다”며 “추경 편성을 하지 못하는 점을 감안해 내년 예산을 넉넉하게 짜야 한다”고 말했다.
적자국채 발행 가능성에…기재부 ‘난감’
기재부는 이날 당정 협의에서 여당의 요구에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는 확장 재정 취지에는 동감하면서도 급속한 재정 악화를 우려해 올해 증가율(9.5%) 이내 수준의 편성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의 한 참석자는 “기재부 측은 ‘재정 건전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내년에 530조원 규모로 예산을 짜려면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 민주당 관계자는 “내년에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짤 수 있는 예산은 최대 509조원으로 추정된다”며 “이를 초과하면 적자국채로 메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기재부는 재정 악화를 우려하고 있지만 재정 여력이 아직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재정적자 규모가 갈수록 커지는 점은 정부의 고민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우리나라 통합재정수지는 2018년 30조8000억원, 2019년 9조2000억원을 거쳐 내년에 사상 처음 적자(-13조7000억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 통합재정수지는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것으로, 대표적인 재정 건전성 지표다. 이 때문에 민주당 일각에서는 재정 건전성을 지키면서 확장 재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530조원 예산 편성’은 야당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전망이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겉으로는 일본의 경제보복 대응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내년 총선을 위해 ‘돈 풀기’를 하겠다는 의도”라며 “예산심의 과정에서 ‘재정 중독’에 빠진 여당을 철저히 견제하겠다”고 말했다.
임도원/김우섭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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