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셰프·여행작가가 추천하는 日 대체 여행지
일본의 경제침략이 본격화되면서 한국인들의 일본 여행 불매 운동이 거세지고 있다. 사실 일본은 음식 맛이 좋고 소도시 구석구석까지 특색 있는 볼거리가 있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였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일본을 대체할 수 있는 매력적인 여행지가 얼마든지 있다. 국내 최고의 여행작가와 박찬일 셰프가 추천하는 일본 대체 여행지로 이번 여름 휴가를 떠나보면 어떨까?
박찬일 셰프…'맛의 천국' 홍콩
홍콩은 음식 천국이다. 가격이 대부분 적절하거나 싸며, 오랜 관광도시의 관습과 분위기가 있어서 ‘먹는 관광’에 최적화돼 있다. 음식에서는 분명 일본보다 한 수 위다.
우선 아침식사다. 차찬텡이라고 부르는 아침식사집이 유명하다. 차찬텡은 아침과 점심을 위주로 판다. 이른바 브런치도 된다. 아침 일찍, 차찬텡에 가서 라면과 토스트, 밀크티, 커피 등으로 아침을 먹는 건 홍콩인의 일상이다. 홍콩이라는 이종(異種) 문화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죽은 중국인이 대부분 좋아하는 아침 메뉴이기도 하다. 돼지, 닭, 소를 두루 쓰지만 역시 최고는 생선이다. 홍콩인들은 잉어를 아주 좋아하는데, 이를 죽으로도 즐긴다. 잉어의 뱃살, 내장, 머리 등을 따로 골라서 먹을 수 있다. 생선도 부위별로 즐기는 것이다. 소 뱃살, 돼지 간 등을 넣은 죽도 있다. 한마디로 죽으로 만들지 못할 재료가 없다. 죽은 쌀의 구수한 향이 아주 푸근하고, 향기롭다.
홍콩은 국수의 나라다. 온갖 국수가 다 있다. 북방계 국수(란저우면, 베이징면)도 많다. 무엇보다 홍콩 특유의 완탕면을 먹어봐야 한다. 홍콩인들은 아침에도 완탕, 점심도 완탕, 간식도 완탕, 밤참도 완탕을 먹곤 한다. 하늘하늘하게 빚은 작은 만두를 띄운 국수다. 보통 양이 아주 적어서 간식 개념이다. 간수를 넉넉히 쳐서 특유의 향이 나는 걸 좋아한다. 완탕면이 노란색을 띠는 건 이 간수(알칼리 성분) 때문이다. 일본의 라멘도 중·일 전쟁 이후 이식된 이 국수의 변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딤섬은 홍콩에서 필수 아이템. 만두류를 비롯한 작은 요리를 모두 딤섬이라고 부른다. 아직도 전통적인 딤섬집에서는 카트에 갓 만든 딤섬을 싣고 홀을 돌아다니며 즉석에서 내준다. 인기 있는 품목은 금세 떨어진다. 딤섬집에 가면, 브런치로 딤섬을 가볍게 즐기고 차를 마시면서 신문을 읽는 홍콩 노인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최갑수 여행작가…대만 지우펀과 징퉁역
타이베이에서 자동차로 1시간을 가면 기륭이다. 예부터 일본과 교역하는 무역항으로 발달했다. 기륭에 도착한 여행자들은 곧바로 지우펀(九)으로 향한다. 옛날에 이 마을에 9가구 주민이 살았는데 누군가가 외지에 나가서 물건을 사오면 9가구가 나눠서 쓰던 관습으로 생긴 지명이라고도 하고 1893년 청 광서제 때 금광이 발견되면서 대만 토속어로 ‘금이 있는 땅(goubenna)’이라고 불리다 지우펀으로 굳어졌다는 설도 있다.
지우펀은 ‘꽃보다 할배’들이 찾으면서 한국 여행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영감을 준 장소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나이가 지긋한 이들은 1989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비정성시(悲情城市)’의 무대로 기억한다. 지우펀은 한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본다. 지우펀파출소에서 시작해 가파른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독특한 분위기의 가게들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 있다. 이 골목길을 ‘험한 산길’이라는 뜻의 ‘슈치루(堅崎路)’라고도 부른다.
로우위엔(돼지고기 찹쌀떡), 망고 젤리, 누가 크래커, 딤섬 등 대만의 먹거리를 먹으며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지우펀파출소에서 골목길을 올라간 첫 골목의 오른쪽에 있는 2층짜리 점포는 영화 ‘비정성시’의 촬영 장소로 알려진 ‘찻집 비정성시’. 골목 끝에서는 멀리 기륭항(基隆港)이 내려다보인다. 지우펀은 저녁이 더 유명하다.
시간이 난다면 징퉁역으로도 가보자. 석탄을 운송하기 위해 핑시 계곡을 가로지르는 핑시선을 놓았는데, 이 기차선의 종착역이다. 영화 촬영지로 유명해 현지인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라고 한다. 한국의 태백, 영월 등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채지형 여행작가…말라카·카메룬 하이랜드·페낭
소도시 여행을 생각하면 일본이 먼저 떠오르지만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태국, 베트남, 미얀마 등 아시아 여러 국가도 매력 넘치는 소도시를 품고 있다.
특히 말레이시아에는 말라카와 카메룬 하이랜드, 페낭 등 다채로운 재미를 맛볼 수 있는 소도시가 적지 않다. 말레이반도 남서부에 자리한 말라카는 동서양의 옛 자취를 만날 수 있는 도시로, 여행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주요 해상교통의 거점으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국 식민지를 거치면서 여러 문화가 스며들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어 당일여행으로 주로 찾지만, 잠깐 머물다 가기에는 아쉽다. 좁은 골목을 따라 걸으며, 고풍스러운 정취를 누리다 보면 하루가 금방 저문다. 해 질 녘에는 해상 모스크를 찾아 감동스러운 일몰을 보고, 밤에는 바에서 시원한 맥주와 함께 알록달록한 야경을 즐겨보자.
카메룬 하이랜드는 차밭으로 유명하다. 끝없이 이어진 차밭을 따라가다 보면 몸과 마음이 초록으로 물들 것만 같다. 필수코스는 말레이시아 대표 차 브랜드인 BOH 차 농장으로, 농장 안에는 홍차와 스콘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자연을 사랑한다면 모시 포레스트 트레킹도 추천한다. 모시 포레스트는 습도가 높고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에 형성된 이끼가 많은 숲으로, 원시 정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페낭은 보는 재미와 먹는 재미가 넘치는 소도시다. 무역항으로 활약했던 역사 덕분에 중국과 인도, 페라나칸 등 다채로운 문화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조지타운 곳곳에는 감성 넘치는 빈티지 벽화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페낭은 미식도시로도 이름이 높다. 알싸한 향신료 가득한 국수 아쌈 락사를 비롯해 불 맛이 인상적인 차 꿰 티아우, 깊은 풍미의 국민 음료 떼 따릭까지 대표 메뉴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길거리 음식을 한 번 맛보고 나면, 페낭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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