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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克日을 위한 첫 단추 다시 끼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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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日
경제적 실리 챙기면서
아시아 패권 노리는 건 아닌가

'强 대 强'으로 맞대응하는 정부
경제적 고립에, 자주외교도 후퇴
反日감정만 이용해선 안돼

최원목 <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는 데까지 이른 일본의 대한(對韓) 경제보복 조치는 도가 지나쳤다. 미·중 패권전쟁 속에서 미국에 붙어 아시아 패권을 노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일본이 세계 3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원동력은 평화·선린 외교였으나 이젠 그 명분을 잃고 있다. 그래도 우리가 냉철하게 생각해 볼 점은 아베 신조 정부가 한국 법원으로부터 강제집행 명령을 받은 자국 기업(일본제철)의 이익을 철저히 보호하는 한편, 미·일동맹체제로부터 일탈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를 상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대신해 미·일동맹의 무서움을 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패권외교의 실리를 철저히 챙기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어떤 명분과 실리를 챙기고 있나?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옷을 입는 사람은 처음엔 문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단추를 내리 끼워갈수록 뭔가 이상하고 어색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도 고집을 피워 계속 진행하면 온몸이 답답해지고 추한 모습만 드러나게 된다.

지금 벌어지는 한·일 간 치킨게임의 시작은 우리 대법원이 일제 강점기 때 강제노역을 당한 근로자에게 일본 기업이 위자료를 배상하라는 판결이었다. 이 판결 내용 자체는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현대적 경향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더 큰 그림에서는 잘못 끼운 첫 단추였다. 당시 사법적폐 청산 대상으로 떠올라 국민의 인기 회복이 급선무인 대법원이 과거 원수지간이던 국가 간에 어렵게 맺은 핵심약속(한·일 청구권협정)을 무시하고 협정을 재해석해 버렸다.

그다음 단추는 일본 때리기를 가속화한 청와대가 그대로 내리 끼웠다. 일본 당국자들이 무역보복을 공언하면서 한·일 경제전쟁의 기류가 본격화됐지만, 우리 정부는 오히려 판결의 강제집행 과정을 정치적으로 뒷받침했다. 한국 구축함의 일본 초계기 사격용 레이더 겨냥 논란까지 겹친 상황에서 후쿠시마 수산물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승소 업적을 대대적으로 찬양하면서 유례없는 재난을 당한 일본인들의 상처를 불필요하게 자극한 측면도 있다. 이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에 정면 대응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까지 거론하고 있다. 그다음은 서로 기본관계협정을 무시하며 외교관계, 국교 단절까지 가자는 것인가.

다급한 쪽은 글로벌 선진 한국의 몸뚱이에는 맞지 않는 뒤틀린 옷이 입혀지고 있는 한국이다. 각종 필수 산업소재 조달 문제가 발생함은 물론, 미·일동맹과 동남아·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경제동맹 축에서 공히 주도적 역할을 하는 일본의 공공연한 반대(미국의 묵시적 지원)에 직면하면 아시아태평양지역 경제협력체제로부터 순식간에 고립될 수 있다. 앞으로 우리의 대외 외교·경제 관계에서 마치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일본 경제에 미친 영향만큼이나 수십 년간 복원해야 하는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자주외교’라는 명분은 찾을 수 있나? 일본과 척을 지는 것도 모자라 GSOMIA 폐기로 미·일 군사동맹체제와 점점 멀어지는 것이 ‘수단’으로서의 자주외교라 말할지 모른다. 모든 외세와의 관계를 단절하는 수단으로 정말로 자주외교 ‘목표’가 달성될 수 있다면 세상 어느 나라가 자주외교를 마다하겠는가? 오히려 그동안 갑의 지위에 있던 한·일 양자관계에서도 이제는 을의 지위에 놓일 수밖에 없는 기업 환경으로 우리 스스로 들어간 셈이다. 미국 외교력의 의존 필요성도 오히려 높아지게 됐다. 당장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 요구가 백악관으로부터 답지해 있는 상황에서도 정부가 미국 측에 중재 요청을 하느라 정신이 없지 않은가. 청와대는 자주외교의 수단 행사를 그 목표 달성으로 혼동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제중재 회부를 수용하는 대가로 경제보복을 철회하라는 제안을 일본 측에 해야 마땅하다. 진정한 극일(克日)을 위한 몸 만들기는 잘못 끼운 첫 단추부터 다시 끼우는 데서 시작된다. 그래도 이 뒤틀린 전투복을 그대로 끝까지 입고 경제전쟁터로 나서라고 국민에게 명령한다면, 그동안 부풀려진 반일감정 말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래야 하는지 청와대가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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