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교의 철학이 국가 운명 갈라
정치 권력에 휘둘리는 일 없이
헌법적 가치 수호에 전념해야"
류제승 <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前 국방부 정책실장 >
최근 북한 목선 귀순 사건으로 우리 군(軍)은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국민들은 군사대비 태세의 허점을 염려하고 은폐·축소된 상황 설명을 꾸짖었다. 현역 군인들은 참담한 심정일 것이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가.
우리 사회에서는 군이 너무 쉽게 정치·사회적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 문제의 본질은 한마디로 정치와 군사의 부조화에 있다고 본다. 이제라도 군의 중심인 장교단의 국가의식·지휘철학·정신문화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군인과 국가의 관계를 제대로 설정해야 한다. 군인이라면 적어도 국가의 존재 이유와 정치권력의 기능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국가의 책무는 국민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최대한 보장하는 데 있다. 국가권력이 내·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은 기본이다.
한편, 국민 개인에게는 자기계발과 직업생활에서 소명을 다해 국가를 부강하게 건설하는 데 기여할 책임이 있다. 국민의 한 사람인 군 장교는 국가가 선택한 군사전문 직업인이다. 이 세상에서 장교의 자아실현 노력만큼 국가의 책무와 동일시할 수 있는 직업인은 없다. 더욱이 군대는 어떤 조직보다도 집단성이 뚜렷한 조직이다. 그래서 장교단의 국가관을 보면 그 나라의 현재와 미래가 보인다고 단언하는 것이다.
이런 국가의식을 바탕으로 장교는 부단히 자신을 연마하면서 판단력을 함양해야 한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강한 국가가 되려면 강한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국 프로이센이 1806년 예나 전투에서 참패해 나폴레옹에게 국권을 빼앗긴 직후였다. 그가 염원했던 강한 군대의 비결은 장교의 판단력에 있었고, 지금까지 독일군 지휘철학의 핵심 가치로 계승되고 있다. 장교단의 우월한 판단력이 프로이센을 주변 강대국의 위협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요인이란 신념에서였다.
판단은 개념과 직관의 작용이다. 개념은 열심히 연마한 노력의 산물이고, 직관은 개념이 고도화됐을 때 비로소 발휘된다. 이처럼 중요한 판단력의 근원은 ‘자아의식’이다. 장교는 자신의 생각이 언어와 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철저히 의식하는 것을 체질화해야 한다. 이런 장교의 지휘철학은 전장에서 자신은 물론 부하들의 운명까지도 가르기 때문이다.
장교단의 정신문화는 반드시 헌법적 가치와 법규에 기반을 둬야 한다. 장교는 ‘군복을 입은 국민’이다. 장교가 수호해야 할 헌법적 가치는 국군의 국가안전보장·국토방위·정치적 중립 의무(헌법 제5조)를 비롯해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 인권을 포함한 일련의 자유권, 국방의 의무를 포함한 6대 의무 등을 일컫는다. 다만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동안 거주이전·결사집회의 자유 등은 제한을 받는다.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과 시행령, 군형법 등은 장교의 규범적 권위를 제공해준다. 여기서 명령과 복종의 절대성은 성립할 수 없다는 명료한 기본 인식이 필수적이다. 장교라면 어떤 명령이든 헌법적 가치와 법규에 정합하는지, 합법적이고 합리적인지, 충성의 대상이 국가인지 정치권력인지를 냉정하게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판단에 기초한 자신의 언행이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지도 자문해야 한다.
장교단이 이런 윤리관을 갖춘다면 결코 진실을 왜곡하거나 감추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장교단의 임무는 사회의 관심과 응원 없이는 완수할 수 없다. 본래 군사 활동에는 무수한 마찰요인이 내재돼 ‘무결점’ 달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장교들은 ‘우리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생명을 바친다’, ‘우리는 언제나 명예와 신의 속에 산다’는 신조를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믿는다. 국민들은 권력의 어떤 유혹에도 대한민국 장교단이 정체성을 견지하는 믿음직한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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