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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과 맛있는 만남] 홍종성 딜로이트안진 대표 "콤플렉스 극복 위해 남과 다른길…'최연소 CEO'에 이르게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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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마다 임직원과 영상 채팅
수평적 리더십으로 조직에 활력



[ 김진성/황정환 기자 ]
지난 3월 취임한 홍종성 딜로이트안진 대표(50)는 국내 4대 회계법인 최고경영자(CEO) 중 가장 젊다. ‘최연소 수장’인 만큼 초고속 승진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그의 행보는 승승장구와는 거리가 멀다. 홍 대표는 28년 회계사 인생 대부분을 남들이 가지 않은 허허벌판에 길을 만들며 걸어왔다. 서울 이촌동에 있는 퓨전 한식당 ‘초록바구니’에서 홍 대표를 만났다. 그가 고객사나 회사 임직원들과 종종 찾는 곳이다. 제철 식재료로 만든 독창적인 음식을 선보인다.

홍 대표는 이날 회사 로고와 같은 연두색 넥타이를 매고 왔다. 취임한 지 116일째. 회사 전반을 파악한 뒤 본격적으로 자신의 경영색깔을 드러내는 시기다. 그만큼 분주한 때다. 그는 “숨 가쁘게 달려온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냉철한 회계사지만 그동안 살아온 개인 스토리를 풀어내 달라는 기자의 주문에 조금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일단 맥주를 한 잔 마신 뒤, 본격적으로 이야기보따리를 꺼내기 시작했다.

일찍이 회계사 매력에 ‘풍덩’

홍 대표가 처음 회계사의 꿈을 품은 건 고등학생 시절이다. 비교적 이른 나이였다. 그는 “선배들의 홍보에 홀딱 넘어갔다”며 샐러드에 젓가락을 댔다. 청경채, 토마토, 콜라비 등에 마늘 소스가 정갈한 조화를 이뤘다. 신선한 재료 본연의 맛이 입안을 메웠다.

“당시 고려대 경영대에 다니던 선배들이 학교로 찾아와 회계사가 굉장히 매력적인 직업이란 이야기를 했어요. ‘자본주의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데다 대우도 잘 받는다고요.”

홍 대표가 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니던 1980년대 중후반은 ‘회계사 전성시대’로 불렸다. 고소득 전문직인 데다 자본시장 건전성을 지킨다는 ‘명예’도 있었다.

이미 회계 관련 수업을 학교에서 듣고 있었던 것도 진로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그가 다닌 배재고는 당시 부기(기업의 재산상태와 변화를 기록하는 일)가 정규교과에 포함돼 있었다. 일종의 선행학습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홍 대표는 “원인과 결과가 딱 떨어지는 숫자들을 다루는 것이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곧바로 공인회계사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공부한 지 2년 만인 1991년 회계사 자격증을 땄다. 그해 11월 안진회계법인에서 회계사로서 첫발을 뗐다. 그는 당시 국내 1위 회계법인에도 합격했지만 안진회계법인을 택했다. 당시 유일하게 글로벌 시스템을 갖춘 곳이어서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아서앤더슨 산하에 있던 안진회계법인은 모든 업무가 영어로 이뤄졌다. 철저한 검증과정을 거쳐 소수정예만 뽑는 인사절차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영어 울렁증을 극복하라

구운 버섯과 페코리노 치즈, 올리브, 렌틸콩 등을 함께 넣고 끓인 수프가 두 번째 메뉴로 올라왔다.

홍 대표는 근사한 신입 생활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입사하자마자 영어가 가장 큰 장벽으로 다가왔다. 보고서 작성부터 막막했다. 한동안 선배들이 예전에 써놓은 영문자료를 옆에 끼고 살았다. 영어로 인한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오래갔다. 콤플렉스가 됐을 정도다.

그는 영어 울렁증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해외로 나가기로 결정했다. 1997년 자원해서 베트남 호찌민으로 2년 반 동안 파견근무를 떠났다. 선진국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현지에 가장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곳을 최우선으로 선택했다.

낯선 환경에 몸을 던진다는 각오였지만 베트남 생활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현지 사무소는 미국, 뉴질랜드, 대만, 싱가포르 등 다양한 국적의 임직원들로 구성됐다. 한국인은 홍 대표가 유일했다. 아내 빼곤 한국인과 대화할 기회조차 없었다. 홍 대표는 “매일 뭘 했는지 상세히 보고해야 했다”며 “하루하루 사무실 가는 게 지옥 같았다”고 회고했다.

답답함이 쌓여가자 그는 직접 한국인을 찾아나섰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시중은행 관계자들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 만나 달라고 요청했다. 돌아오는 답의 대부분은 거절. 만남이 성사되더라도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30분 정도에 불과했다.

궁리 끝에 직접 ‘월남경리인연합회’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매달 사무실로 삼성전자, 코오롱, 현대 등 한국 기업 경리담당자들을 초청해 새로 바뀐 세금규제 등을 설명했다. 한국인들과 소통하고 싶어 시작한 일은 자연스럽게 영업으로 이어졌다. 삼성의 모니터 생산공장 감사를 맡는 등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하나둘씩 고객이 됐다. 홍 대표는 “개인적 절박함 때문에 벌인 일 덕분에 마케팅 공부도 하고 영어 울렁증까지 해소했다”며 “내성적이던 성격도 베트남에서 조금은 외향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M&A 세계로 뛰어들다

홍 대표가 베트남 생활을 마무리한 1999년, 한국 자본시장은 외환위기 후폭풍으로 한창 지각변동을 겪고 있었다. 갑작스런 유동성 위기로 주요 기업들이 줄줄이 고강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회계법인들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M&A 재무자문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홍 대표는 외환위기가 한국을 휩쓸 때 해외에 있다 보니 이처럼 큰 변화에 뒤처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귀 후 M&A 재무자문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던 선배를 찾아가 “재무자문 업무를 하고 싶다”고 자원했다.

그의 과감한 보직변경 전략은 주효했다. 홍 대표는 이후 20년간 국내 굵직한 M&A에 참여하며 손꼽히는 전문가로 부상했다. 초창기 그가 맡았던 대표적인 거래가 UBS캐피털(현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컨소시엄의 해태제과 인수자문이었다.

해태제과는 경영난으로 1997년 부도를 맞아 청산위기까지 몰렸지만, UBS캐피털 측이 2001년 ‘브라보콘’ ‘홈런볼’ 등 주요 브랜드 상표권과 공장설비를 묶어 사들여 기사회생했다. 안진회계법인은 인수과정에서 실사 수수료로만 100만달러 이상을 받으며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내 M&A 실사는 재무제표상 자산과 부채가 제대로 기재됐는지 확인하는 수준이었어요. 우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회사의 이익 수준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될지, 주인이 바뀌고 자본이 더 투입되면 이익이 어떻게 바뀔지까지 분석했습니다.”

뼈아픈 상처 남긴 대우조선

후식으로 인절미처럼 생긴 ‘공기떡’이 나왔다. 부피를 팽창시켜 얼린 물에 콩가루를 입히는 분자요리 기법으로 만들었다. 겉보기엔 찰져 보이는 떡을 한 입 베어 물자 아이스크림보다도 빠르게 녹아내렸다.

맥주를 반주 삼아 이야기하던 홍 대표는 대우조선해양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다소 가라앉았다. 딜로이트안진은 2016년 감사를 맡았던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사태로 크게 휘청였다. 홍 대표는 말이 길어질 것 같았는지 소주와 함께 안주를 추가로 주문했다.

“대우조선 사태 이후 파트너의 4분의 1이 그만두는 등 임직원이 대거 회사를 떠났습니다. 그 파장으로 무거운 분위기가 지속된 건 사실입니다.”

그는 절망적인 시기를 보냈음에도 그 속에서 발견한 희망에 주목했다. 홍 대표는 “매를 세게 맞으면서 우리를 포함한 회계법인들의 감사품질이 훨씬 높아졌다”며 “이제는 기업이 회계상 변화를 재무제표에 반영하지 않은 것을 알고도 감사보고서에 이를 적지 않는 회계사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회계사가 기업 회계부정에 대한 책임을 과도하게 지는 식으로 분위기가 변한 것에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홍 대표는 “재무제표 작성 책임이 경영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며 “더불어 감사인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재무제표를 검증할 환경이 조성돼야 회계투명성이 개선된다”고 강조했다.

홍 대표는 이제 대우조선 사태가 남긴 상처를 봉합하고 내부 결속력을 다지며 성장에 집중하고 있다. 회계업계에선 최연소 CEO 취임으로 ‘인사 칼바람’이 불 것이란 예상이 많았지만, 여전히 딜로이트안진엔 홍 대표보다 오랜 경력을 쌓은 선임들이 핵심 부서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홍 대표는 “나이와 관계없이 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면 거기에 맞는 자리를 주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수평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색다른 시도도 하고 있다. 3개월마다 라이브 영상채팅을 통해 실시간으로 임직원들과 소통하기로 했다. 지난 3월 진행한 첫 채팅에선 600여 명이 접속해 질문을 쏟아낼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홍 대표는 CEO 이후의 꿈을 묻자 “재능기부를 원하지만 ‘그런 생각하기 전에 더 열심히, 오랫동안 일하라’는 아내의 잔소리를 듣고 있다”며 껄껄 웃었다.

■딜로이트안진은…

딜로이트안진은 세계 최대 회계 컨설팅그룹인 딜로이트투시토마츠(Deloitte Touche Tohmatsu Limited)의 한국 회원사다. 삼일회계법인, 삼정KPMG, EY한영과 함께 국내 4대 대형 회계법인으로 꼽힌다. 세계 150여 개국에 약 28만 명의 전문가를 둔 글로벌 본사와의 끈끈한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기업에 회계감사, 세무자문, 재무자문, 리스크자문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글로벌 본사와 같은 수준의 서비스 품질을 추구하며 전문가의 사회적 책임과 공유가치 창출을 경영목표로 삼고 있다. 홍종성 대표가 지난 3월 취임해 회사를 이끌고 있다.

■홍종성 대표이사 약력

△1969년 경기 남양주 출생
△1987년 서울 배재고 졸업
△1992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1991년 딜로이트안진 감사본부 입사
△2005년 딜로이트안진 감사본부 파트너
△2010년 딜로이트안진 재무자문본부 인수합병(M&A) 라이프사이클센터장
△2015년 딜로이트안진 재무자문본부장
△2017년 딜로이트안진 총괄부대표
△2019년 딜로이트안진 대표


홍종성 대표의 단골집 초록바구니

'분자요리'로 입소문…후식 '공기떡' 인기

서울 동부이촌동에 있는 초록바구니는 채식을 기본으로 한 한식 코스요리를 선보이는 모던 한정식 레스토랑이다.

식당 주인이자 주방 책임자인 김기호 셰프가 1998년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문을 연 뒤 2009년 지금 있는 곳으로 옮겨 자리잡았다.

초록바구니는 식재료의 특성을 분자 단위로 분석해 새로운 형태로 결합, 창의적인 맛을 내는 ‘분자요리’를 다뤄 미식가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다.

물로 부피를 팽창시킨 뒤 액체질소로 얼리고 콩가루를 입혀 겉보기엔 인절미 같지만 입에 넣는 순간 녹아 사라지는 ‘공기떡’은 후식임에도 단골들이 자주 찾는 메뉴다.

메뉴는 코스요리와 일품요리로 나뉜다. 죽과 전채요리, 메인요리와 후식으로 구성된 코스메뉴는 1인당 3만3000원부터 시작한다. 계절별로 두 번씩 1년에 총 여덟 번 메뉴가 바뀐다. 화학조미료나 첨가물을 넣지 않는 것이 식당의 원칙이다.

김진성/황정환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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