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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美는 아무런 준비 없이 6·25전쟁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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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전쟁

T R 페렌바크 지음 / 최필영·윤상용 옮김
플래닛미디어 / 824쪽 / 3만9800원



[ 서화동 기자 ]
1950년 7월 5일 아침. 일본의 이타즈케 공군기지에서 날아온 400여 명의 미군 장교와 병사들이 경기 수원과 오산 사이에 난 도로를 따라 진지를 파고 자리잡았다. 북한군이 기습 남침을 감행하자 맥아더 장군이 미군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선발대로 보낸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였다. 병사 한 명당 지급된 탄약은 120발, 이틀치 전투식량과 함께였다.

오전 8시, 능선을 향해 오는 전차 8대가 보이자 공격을 개시했다. 105㎜ 야포가 불을 뿜었다. 고폭탄이 전차 대열로 날아갔다. 그러나 인민군의 T-34전차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전진했다. 22발의 로켓포 공격도 무위에 그쳤다. 전차 대열이 시야에 들어오자 병력은 흩어지기 시작했고, 병사들은 공용화기를 버린 채 진지에서 탈출했다. 다음날 아침 스미스 중령 휘하에 남은 병사는 185명에 불과했다.

6·25전쟁을 미국이 얼마나 준비 없이 대처하고 시작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이름만 특수임무부대일 뿐 대전차 지뢰도 없었고,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병사들은 훈련되지 않았고, 한 대뿐인 낡은 무전기조차 비에 젖어 작동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전력을 과시함으로써 적에게 겁을 줘 진격을 저지한다는 구상으로 이 부대를 전쟁에 맨 먼저 투입했다니 기가 찬다.

6·25전쟁 참전용사이자 역사저술가인 T R 페렌바크(1925~2013)는 《이런 전쟁》에서 미국이 당시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에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미군의 훈련, 장비, 기강이 해이했음은 물론 미국 정부는 전쟁 발발 전 북한의 남침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무시했다. 전쟁 발발 이후에는 중공군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오판했다. 핵무기를 손에 쥐고서도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될까 두려워 소련과의 전면전을 피하는 데 급급했다. 단지 공산 진영의 세력 확장을 막겠다는 봉쇄정책을 내세워 제한된 전쟁을 펼칠 궁리만 하는 등 싸울 의지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페렌바크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명문 프린스턴대에 다니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참전해 중위로 전역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6·25전쟁이 일어나자 육군에 복귀해 72 전차대대 소속으로 참전했다. 중령으로 전역한 그는 텍사스에서 보험 판매업을 하며 부업으로 글을 썼는데, 문체가 웅장하고 화려하다.

휴전한 지 10년 만인 1963년 초판이 나온 이 책은 참전했던 미군 장병들의 생생한 증언과 공식 기록, 작전계획, 전문(電文), 일기, 역사기록물, 회고록, 신문 등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세세한 검증을 거쳐 탈고한 6·25전쟁사다. 전쟁을 미리 준비하지 않은 미국의 잘못을 돌아보고 6·25전쟁의 교훈을 되새기는 ‘미국판 징비록(懲毖錄)’이라는 역자들의 평가가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도 미국 육군사관학교와 육군 지휘참모대학의 필독서라고 한다.

책은 구한말 이후부터 전쟁 발발 이전까지 한국이 처한 시대적 상황과 전쟁의 발발 배경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개전 후 미군의 첫 전투와 처절한 패배, 인민군의 파상 공세와 낙동강 방어선 사수,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 압록을 향한 유엔군의 진격과 중공군의 예상치 못한 개입, 강추위 속에서 벌어진 장진호 전투의 악몽과 미국 해병대의 흥남 철수, 2년여를 끈 정전회담과 교착상태에 빠진 전쟁, 피의 능선·단장의 능선 등에서 펼쳐진 엄청난 전투와 휴전협정 체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시간 흐름에 따라 전개된다.

전쟁소설 같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같기도 한 저자의 탁월한 글솜씨가 제법 두꺼운 책인데도 지루함을 주지 않는다. 책에서는 저자 자신이 참전한 사실을 밝히지 않았지만 시시각각 달라지는 전세와 전투 장면들을 생생하게 재현한 것은 풍부한 증언과 자료뿐만 아니라 직접 참전한 덕분일 것이다.

개전 초기 미 24사단은 17일 동안 160㎞를 후퇴하면서 병력의 30% 이상을 잃었다. 2400여 명이 실종됐다. 준비가 부족해서였다. “미군은 군기도 없고, 훈련도 안 돼 있고, 적의도 없이 전쟁터에 왔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하지만 점차 전투를 치르면서 군인이 돼갔고, 적의로 충만해졌다. “그들은 전쟁 초기의 무관심을 날려버리고 적개심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중략) 한국에서 전개된 미 1개병사단, 2사단, 24사단, 25사단의 병사들은 군인이 돼가고 있었다.”

“이승만과 대한민국의 비극은 간단했다. 휴전을 받아들이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영구 분단을 뜻했다.” 원치 않는 휴전협정을 받아들여야 했던 한국 상황을 저자는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만일 미국이 전쟁에서 지고 한국에서 철수했다면 아시아는 필연적으로 공산주의의 수중에 떨어졌을 것”이라며 “한국전쟁의 최종적인 역사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게임은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평가했다.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 준비하지 않은 자에게 전쟁은 더 큰 비극일 뿐이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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