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리베이트 규정 강화
국세청, 개정안 7월1일 시행
[ 김보라/안효주 기자 ]
전국 대형 술 도매상들은 이달 들어 주문량을 20~30%씩 늘리느라 비상이 걸렸다. 더 이상 술을 채워 넣을 수 없을 만큼 재고가 급증했다. 국세청이 다음달 1일부터 ‘주류 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 개정안을 시행한다고 발표한 지난 3일 이후 도매상들은 싼값에 제품을 확보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이 개정안의 핵심은 주류 제조·수입사가 ‘판매장려금’ 명목으로 특정 도매상에 할인 또는 금품 등의 리베이트를 주면 함께 처벌하는 ‘쌍벌제’ 도입이다. 1164개 전국 도매상에 ‘동일 시점, 동일 가격에 납품’해야 한다는 조항도 들어 있다.
주류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한 달에 1만 병씩 판매하는 대형 도매상과 소도시에서 한 달에 10병을 겨우 판매하는 영세 도매상에 납품가격을 똑같이 맞추라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 배치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뭐가 바뀌나, 왜 바뀌나
정부는 주류업계의 불공정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쌍벌제 등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국내 주류 시장은 도매상 중심이다. 전국의 인구수 등을 고려해 정부가 면허를 발급한다. 그동안 선금을 주고 주류 판매 계약을 하거나, 업소에서 드는 홍보비 등을 대신 내주고 할인해주는 관행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주는 사람만 처벌받았지만, 이제 받는 사람까지 처벌의 범위와 수위가 높아진다.
상위 10%의 도매상이 도매업계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5% 정도다. 나머지 90%의 영세 도매상들은 불만이 많았다. 주류 공급사들이 대형 도매상에만 특혜를 준다고 주장해왔다. 또 도매상들만 중간에서 금품과 홍보비 등을 챙기고, 소비자들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국세청 관계자는 “리베이트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20년 전부터 있었고 업계도 이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이 쌍벌제를 도입한 건 주류업계 풍토를 더 투명하게 유도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이달 20일까지 주류업계 의견을 수렴한 뒤 다음달 1일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20년 주류 영업, 1개월 내 바꾸라니”
1개월 안에 20년 이상 해온 영업 방식과 조직을 바꿔야 하는 관련 업체들은 비상이 걸렸다. 영업팀 교육과 조직개편, 가격 조정에 나서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제약 리베이트도 1년간 유예기간을 주고 시행했는데 1개월 안에 다 바꾸라고 하니 패닉 상태”라고 말했다.
논란의 중심에는 납품 가격이 있다. 그동안 주류 기업들은 강력한 영업력을 가진 대형 도매상들에 ‘규모의 경제’를 적용해 할인율을 높여줬다. 한 위스키업계 관계자는 “물류비와 취급량 등을 고려해 프로모션과 인센티브를 적용했고, 이는 자율적인 경쟁을 유도해왔다”고 말했다.
동일 시점, 동일 가격 조항도 문제다. 신규 수입 브랜드가 국내에 들어오거나, 새 제품을 내놓으면 기업들은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펼친다.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인 만큼 우선 대형 도매상에 할인된 가격으로 물량을 공급하는데 앞으로는 이런 마케팅이 사실상 어려워진다.
편의점 맥주 ‘4캔 1만원’ 사라지나
앞으로는 주류 제조·수입회사가 편의점과 대형마트, 동네 슈퍼마켓 등에 납품하는 술의 출고 가격을 다르게 책정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4캔에 1만원’ 등의 프로모션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맥주의 경우 그동안 편의점 납품가격은 대형마트보다 낮았다. 대형마트 수준으로 납품 가격을 맞추게 되면 편의점에서 4캔이 아니라 3캔에 1만원 등으로 조정해야 할 수도 있다. 편의점 관계자는 “주류 시장 질서를 개편한다고 하면서 납품 가격을 같게 하는 건 경쟁 원리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할인이나 홍보비 등 판매장려금이 사라지면 일부 도매상은 소매상에 납품하는 납품가격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 가격을 크게 올릴 수는 없는 만큼 결국 영세 상인들의 마진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김보라/안효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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