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안정성' 확보 안돼
기업 활력 쪼그라들고
경제는 마이너스
'삼바' 본질은 회계분식 여부
증거인멸 정황증거로
분식 입증 무리수 거둬야"
조동근 < 명지대 명예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
‘페카토 모르탈레’는 이탈리아 말로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뜻이다. 공직자가 국가 예산을 낭비하거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죄다. 하지만 더 큰 죄는 국가가 경제 운영을 잘못해 국민의 지갑을 얇게 만드는 것이다. 올 1분기 우리나라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0.4%다. 한국은 기업 활력을 기대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점이 더 우울하게 만든다. 법치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법적 안정성’마저 확보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가 그 사례다.
삼성바이오 사태를 복기(復棋)해 보자. 증권선물위원회는 작년 11월 삼성바이오에 대해 ‘고의분식회계’ 판정을 내렸다. 삼성바이오는 증선위 판정에 불복해 행정 소송을 제기하고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서울행정법원은 고의 분식회계 등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삼성바이오에 제재를 가하면 회복 불가능한 손해가 생길 수 있다고 판단하고 삼성바이오의 가처분신청을 인용했다.
시장은 ‘본안 소송’에서 증선위와 삼성바이오 간 첨예한 논리 다툼을 기대했지만 사태는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1년 전 증거인멸’에 대한 수사가 그것이다. 작년 5월에 삼성이 증거인멸을 시도했고 또 은닉했다는 것이다. 작년 5월은 분식회계 재감리를 둘러싸고 1차 위원회가 열린 시점이었다. 증선위는 7월 5차 감리위원회를 열어 징계의 가닥을 잡고 그해 11월에 공식적으로 회계분식 판정을 내렸다. 따라서 무엇을 인멸했는지는 모르지만 그와 관계없이 분식 판정이 내려졌다.
증거인멸 시도와 회계분식은 층위가 다른 문제다. 삼성바이오 문제의 본질은 ‘회계분식’ 여부다. 작년 11월 증선위가 재감리를 통해 회계분식 판정을 내린 논거는 ‘삼성바이오가 2012~2014년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지분법으로 회계처리하지 않고 연결대상으로 처리한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피스를 설립한 2012년에 삼성바이오 지분은 85%고 이사회 구성도 삼성 4명, 바이오젠 1명이었다. 더욱이 바이오젠은 에피스 설립 시부터 ‘지배력은 삼성바이오가 행사하고 있다’고 매년 공시했다. 따라서 2012년 설립 당시 자회사로 인식하고 연결회계 처리한 것은 문제가 없다. 바이오젠의 콜옵션을 ‘실질적인 권리’로 봐야 한다는 증선위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지는 않다. 이제 막 출발한 ‘실적을 내지 못한 회사’에서 콜옵션이 갖는 의미는 제한된다.
문제의 핵심은 삼성바이오가 2015년에 실현한 이익 1조9000억원이 분식이냐는 것이다. 삼성바이오는 1조9000억원 이익실현의 산출 근거를 ‘회계처리 변경 전 손익 -1600억원+에피스 지분평가액 4조5400억원-콜옵션 부채손실 1조8200억원-법인세 6600억원’으로 제시했다. 지분평가액은 에피스를 자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지위를 바꾸면서 생긴 일회성 평가익이며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도 부채손실로 적법 처리됐다. 따라서 자본잠식을 피하기 위해, 즉 상장폐지를 면하기 위해 관계회사로 변경처리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삼성바이오는 이익을 못 냈지만 미래가치로 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회계평가 기준 변경’에 따른 일회성 이윤 반영을 분식회계로 몰고 간 증선위가 무리수를 둔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2015년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대로 두 기업의 주가에 의해 결정됐다.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이 되려면 2015년 7월보다 훨씬 이전에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로 제일모직 주가가 고평가됐어야 하지만 삼성바이오는 2016년 11월에야 상장됐다. 따라서 2012~2014년 에피스 회계자료를 다시 작성하라는 증선위 주문은 ‘2015년 합병 이전으로까지 물레방아 물을 거꾸로 돌리겠다’는 의도로도 읽힌다.
증선위는 처음부터 회계분식을 했다는 객관적 증거를 찾기 어려운 게임에 뛰어든 것일 수 있다. ‘증거은닉을 하는 것을 보니 회계분식이 틀림없어’라는 우회로가 논리의 전부일 수 있다. 증거은닉이라는 정황증거 제시로 분식회계를 증명할 수는 없다. 층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관료의 판단으로 이해중립적인 시장의 판단을 가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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