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내 대표적 친(親)이란 세력으로 꼽히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최근 자금난에 대규모 기금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헤즈볼라의 자금난 뒷배경을 두고 미국과 미국 외 국가에선 의견이 갈리는 모양새다.
5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즈는 헤즈볼라가 지난달 6일 시작해 지난 4일 끝난 이슬람 성월(聖月) 라마단 동안에 평소보다 큰 규모로 기금 모금 활동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이 기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선 헤즈볼라 깃발을 단 자동차가 곳곳을 다니며 기부금을 요청하는 음성 방송을 내보냈다. 온라인 메신저서비스 왓츠앱을 통해선 “1달러만이라도 좋다”며 헤즈볼라에 기부를 촉구하는 영상이 퍼졌다. 헤즈볼라의 최고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는 헤즈볼라가 ‘재정적 지하드(이슬람 성전)’에 돌입했다는 이례적인 성명을 냈다.
헤즈볼라 조직 내에서도 재정난 징후가 보이고 있다. FT는 여러 레바논인을 인용해 헤즈볼라 소유 TV방송국인 알마나르 등 헤즈볼라 관련 기관에서 일하는 이들의 급여가 밀리거나 줄고 있다고 보도했다. 헤즈볼라는 시리아에 주둔 중인 일부 병력을 철수시키기도 했다.
미국은 이를 두고 미국의 각종 제재 조치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브라이언 후크 미 국무부 대이란 특별대사는 FT에 “최근 헤즈볼라가 대규모 자금 모금에 나선 것은 미국이 이란에 경제적 압력을 가한 결과”라고 말했다. 헤즈볼라를 지원하는 이란에 대해 대폭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이란의 돈줄이 일부 막혔고, 이에 이란이 이전처럼 헤즈볼라에 많은 지원을 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후크 미 특사는 “이란이 올해 국방 예산을 28% 삭감했다”고 주장했다. FT에 따르면 이 주장을 뒷받할만한 공식 통계는 없다.
반면 이란의 헤즈볼라 지원은 줄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FT에 따르면 서방 외교관 일부와 몇몇 중동 지역 분석가들은 미국의 주장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데다 이란의 헤즈볼라 지원금이 공식적인 통로를 거치지 않아 추적도 어려워서다.
이들은 대부분 헤즈볼라 자금난이 레바논 경기 침체에 따른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아말 사드 레바논대 법정치학과 교수는 “헤즈볼라의 움직임은 이란보다는 레바논 경제 냉각과 관련이 깊다”고 지적했다. 레바논 경기는 최근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국제금융기구(IMF)는 올해 레바논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1.3%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레바논 의회에서 헤즈볼라 세력과 연합한 시아파 정당 아말 소속 야신 자베르 하원의원은 “레바논이 재정적 위기를 겪고 있고, 이 위기가 헤즈볼라와 관련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이 헤즈볼라 지원을 줄일 동인도 별로 없다는 평이다. 한 외교관은 FT에 “이란이 헤즈볼라 등 친 이란 세력에 대한 지원을 줄이지 않을 것”이라며 “투자액에 비해 투자로 인해 역내에 미치는 영향력 효과가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에 이슬람 시아파 단체로 1980년대 이란의 지원을 받아 창설됐다. 휘하에 게릴라조직과 7개의 비밀결사조직을 두고 레바논 내전에서 투쟁을 벌였다. FT에 따르면 지난 40년간 이란혁명수비대가 헤즈볼라 군사 훈련 등을 지원했다. 헤즈볼라는 2000년엔 레바논 의회 진출에도 성공했다. 작년 5월 열린 레바논 총선에서는 헤즈볼라와 동맹 정당이 전체 128석의 절반이 넘는 67석을 차지했다. 미국은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지난 4월 말 헤즈볼라의 자금줄에 대한 정보에 1000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