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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남의 고통 이해 못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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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철 논설위원


[ 김태철 기자 ] 불교 경전 《열반경》에는 ‘맹인모상(盲人摸象)’ 우화가 나온다. 속담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유래다.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을 전체로 생각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빗댄 말이다. 이처럼 제한된 경험과 학습 탓에 인간의 인지능력과 판단력은 편협하고 왜곡되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 갈등을 자극하는 편견과 혐오가 남녀, 지역, 세대, 계층 간 틈을 비집고 들어가 곳곳에서 상처를 남기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남성과 여성 혐오를 자극하는 남혐(男嫌)과 여혐(女嫌)이 판을 치고, 학생과 고령자를 비하하는 ‘급식충’ ‘연금충’ 등의 막말이 난무하고 있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카롤린 엠케가 《혐오사회》에서 밝힌 ‘중증(重症) 혐오증’이 만연한 사회의 모습이다.

끊이지 않는 국내 정치인들의 막말은 사회 갈등을 극대화시키는 대표적인 사례다. 막말은 여야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중순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를 비하하는 ‘달창’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지 며칠 만에 같은 당 김현아 의원은 문 대통령을 ‘한센병 환자’에 빗대 파문을 일으켰다. 상대방 정당이나 당 지도부에 대한 부적절한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도둑놈’(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이코패스’(이정미 정의당 대표)라는 말도 나왔다.

막말 논란은 급기야 ‘헝가리 유람선 참사’사건까지 번졌다. 민경욱 한국당 대변인의 이른바 ‘골든타임 3분’ 발언에 정치권의 집중포화가 쏟아졌다. 민 대변인은 “‘속도’를 강조하는 문 대통령의 대응을 비판하는 의견들을 대변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어설픈 용어 사용으로 비난을 자초했다.

정치권의 구태(舊態)는 소설가 김훈 이 최근 지적한 ‘남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는 현 세태에 대해 “남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남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이 전혀 없다”고 일갈했다. 그러다 보니 “매일 악다구니, 쌍소리, 욕지거리로 날이 지고 새는 사회가 됐다”고 개탄했다.

하지만 도를 넘는 정치권 막말이 공감(共感)능력 부족에 기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정치권의 확증편향이 문제지만 다분히 ‘계산된 도발’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치권이 노골적으로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있어서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속을 이끌어내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분석이다. 혐오로 세(勢)를 불리는 후진적인 정치문화는 그나마 바닥인 우리사회 공감능력을 고갈시키고 또 다른 적대감을 양산하는 악순환을 낳을 뿐이다.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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