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51곳서 831곳으로 감소
최근엔 르노 협력사 공장 폐쇄도
[ 장창민/도병욱 기자 ] 한국 자동차산업을 떠받쳐온 1차 협력 부품사 20곳이 지난해 사라졌다. 2017년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이어 작년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등에 따른 ‘후폭풍’을 견디지 못한 결과다.
2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와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등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산업 1차 협력업체는 2017년 말 851곳에서 지난해 말 831곳으로 감소했다. 자동차산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산업 침체 여파로 굵직한 부품사까지 폐업하거나 사업을 접으면서 1차 협력사 수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차 부품사들의 매출은 71조4423억원으로 2017년(72조6937억원)보다 1조원 넘게 감소했다. 이 여파는 8000여 곳에 달하는 2·3차 업체로 번지고 있다.
올해 사정은 더 나빠지고 있다. 노사 갈등을 겪고 있는 르노삼성자동차는 부산공장 가동 중단(셧다운)을 반복하고 있다. 르노삼성 1차 협력사인 A사는 최근 부산공장을 폐쇄했다. 일부 공장 문만 닫는 게 아니라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협력업체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끝내 문 닫은 르노삼성 협력사 부산공장…상장 車부품사 3분의 1 적자
르노삼성자동차와 한국GM 등에 차체 관련 부품을 공급하는 1차 협력업체 A사는 최근 부산공장을 폐쇄했다. 르노삼성의 노사 갈등이 길어지면서 생산량이 급감하자 아예 르노삼성과의 거래를 접기로 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르노삼성의 생산 감소로 부품 수요가 줄었는데 르노삼성 노조가 불규칙적으로 파업을 이어가는 바람에 부품회사의 부담이 더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지난 4월 부산상공회의소가 르노삼성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한 긴급 조사에서 “부산공장을 정리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당시만 해도 지역 경제계에서는 ‘엄포성 답변’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답변한 지 약 두 달 만에 공장 폐쇄는 현실이 됐다. 지역 경제계는 충격에 빠졌다. 다른 부품사들도 불어나는 손실을 버티지 못해 부산공장을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하거나 공장 규모를 대폭 줄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품사 10%, 세 분기 연속 적자
자동차 부품업계 위기는 부산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과 울산, 경남 창원, 인천 등에 자리잡은 부품사 모두 흔들리고 있다. 특히 수익성이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공장을 돌려 이자도 못 내는 업체가 속출하는 상황이다.
2일 한국경제신문이 국내 86개 상장 부품사를 전수조사한 결과 26곳이 1분기 적자를 냈다. 서연이화, 에스엘 같은 ‘부품업계 대기업’도 마이너스 성적표를 면하지 못했다.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기업도 많다. 전체의 9.3%에 달하는 8개 회사가 세 분기 내리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평화산업 등 4개 회사는 네 분기 연속 적자였다.
흑자를 내고 있다고 해서 사정이 좋은 건 아니다. 1분기 흑자를 기록한 60개 회사 중 40곳은 전 분기보다 영업이익 규모가 줄었다. 작년 1분기와 비교하면 21개사의 영업이익이 떨어졌다. 86개사 전체의 76.7%가 전 분기 대비, 54.7%가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줄거나 적자를 냈다.
부품업계 위기의 원인은 한국 자동차업계의 ‘생산절벽’에 있다. 한국의 1분기 자동차 생산량은 95만7402대로 전년 동기 대비 0.6% 감소했다. 1분기만 놓고 보면 5년 연속 줄었다. 고질적인 고비용·저생산 구조가 발목을 잡았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여파도 아직 남아 있다. 한국GM은 2017년 하반기부터 군산공장을 거의 가동하지 않다가 지난해 5월 아예 폐쇄했다. 1분기 기준 한국GM의 국내 생산량은 2017년 14만8117대에서 지난해 12만1872대, 올해는 11만8918대로 뚝 떨어졌다. 올해엔 ‘르노삼성 사태’까지 터졌다.
부품사 일자리 1만5000개 사라져
상장하지 않은 중소 부품업체의 사정은 더욱 나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대 자동차 부품업체 모임인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1차 협력업체 수는 2017년 851곳에서 지난해 831곳으로 줄었다. 일부는 폐업했고, 일부는 2차 협력사로 떨어졌다. 다른 회사에 합병된 사례도 있다는 전언이다. 부품업계 관계자는 “올 상반기에만 10곳 이상의 1차 협력사가 추가로 사라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차 및 3차 협력업체는 몇 개가 줄었는지 파악조차 안 되는 실정이다. 1차 협력사 한 곳이 문을 닫으면 수십 개의 2차 및 3차 협력사가 영업을 중단해야 한다. 문제는 부품사 하나가 무너지면 수십~수백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올 4월 말 기준 국내 자동차 및 부품업계 고용 인력은 38만4925명이다. 2012년 4월(38만4196명) 후 최저 수준이다. 자동차 및 부품업계 위기가 본격화되기 직전인 2017년 12월 말(40만536명)과 비교하면 1만5611명 줄었다. 사라진 일자리 대부분이 부품업체 일자리라고 업계 관계자는 분석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품사의 실적 악화로 신규시설 및 연구개발(R&D) 투자 규모가 줄고, 결국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창민/도병욱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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